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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혜 Mar 03. 2021

혼밥 가능 혼작 불가

관종의 글쓰기   

재작년까진 참 열심히 썼다. 그때 사주에 상관이라도 들었던 건지 어쩐 건지 나름 '방'과 '여행'을 테마로 잡고 틈이 나는 대로 구구절절 썼다. 어쩌면 2015년 즈음해서 시작된 우울의 씻김 내지는 에고 탐험(?)의 끝판 격 글쓰기 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독자를 의식해 글을 썼고 출판 욕심 또한 있었기에 한글파일의 원고를 부지런히 브런치로 옮겼다. 성기고 거친 원고였지만 퇴고는 하지 않았고 출판 제안 또한 없었다. 물론 퇴고를 여러 번 거쳤다 해도 굳이 종이책으로 낼만큼 매력적인 글은 아님을 잘 안다. 그래도 눈에 보이는 성과물이 없으면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허무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개운했다. 

더 놀라운 것은! 브런치 통계가 알려준 결과, 이 구절양장의 글을 두 명이 완독 했다는 사실이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발췌독도 아니고 완독을 했다고?  


관종력과 인정 욕구를 유튜브로 채워서인지 작년 여름부터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이 뜸했다. 영상과 글은 완전히 다른 장르인데도 화자가 나로 동일한 까닭일까.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바가 나의 창작물을 누군가 보길 바라는 것(꼭 소통까지 이어지지 않더라도)이라면  뭐, 충분히 '대체'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렇다고 내 유튜브 채널이 대단히 흥한 것도 아니지만 창작자 입장에선 새로운 영상마다 수용자의 반응이 즉각적이고 매 영상 호응해주시는 고정 시청자들이 있어 노고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된다. 금전 수익은 보상이라고 말하기엔 아직 미미한 액수다. ㅎㅎ 물론 매일 들여다보긴 한다.


최근 본 어떤 유튜브 영상에서 한 출연자가 자신의 독서공간이라며 창문틀 같은 공간에 올라앉아 책을 읽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때 '나만의 공간에서 혼책!' 이런 식의 자막이 떴는데 별 괴상한 단어를 다 쓴다 싶었다. 책을 여러 명이 돌려 읽는다는 의미의 윤독이 있고, 청자를 앞에 두고 책을 읽는 낭독도 있기야 하지만 독서는 철저하게 단독적인 행위가 아닌가. 물론 다수의 독자가 존재하는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읽지 않고 제 방에서 나홀로 읽는다는 의미로 가져다 붙인 말인 건 알겠는데 내겐 퍽 해괴한 단어로 보였다. 

그러다 문득 단독적인 행위로써 글쓰기에 대한 생각으로 번졌다. 1. 나는 '내가 쓴다'는 행위 자체를 과시하고 노출하지 않았는가 2. 나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글을 마치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처럼 자발적이고 즐겁게 쓸 수 있는가. 한마디로 남을 의식하지 않는 철저한 '혼작'이 가능한가.


올해는 어쩐 일인지 일기를 (아직까지는) 하루도 밀리지 않고 쓰고 있다. 그러나 오늘 먹는 꽈배기 맛이 어땠는지를 찌끄리는 서너 줄의 토막글로 아 나는 역시 글쓰기를 좋아해! 내 사명은 글쓰기야!!라고 할 순 없다. 나는 왜 쓸까. 내 글쓰기의 희열이 '쓴다'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잘 읽었음'의 반응에서 오는 것이라면 나는 글자가 아닌 다른 창작의 재료를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글쓰기를 고수하는 까닭은  유튜브 활동과는 비교할 수 없이 긴 시간 동안, 내가 만든 여러 가지 중 가장 많은 수용자와 호응이 따랐다. 하여 글쓰기로 생계를 이어왔으며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새 재료를 찾기 주저하는 이유는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 필연적으로 따를 스트레스가 두려워서다. 그래서 유튜브는 퀄리티의 발전이 없고 공공연히 '취미'일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일기를 잘 쓴다고,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급신문을 잘 만든다고 칭찬을 받으면서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기로 다짐했다. 숫자 조합은 어려웠고 글자 조합은 할만했는데 나아가 칭찬과 상까지 받으니 나는 글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가 싶었다. 내 인생 최초의 희열은 글쓰기상을 받기 위해 아침 조회시간, 호명과 함께 구령대로 뛰어올라 갈 때였다. 사회초년생 때 왜 비문 인지도 모르는 비문들을 써내고 선배들에게 빨간펜으로 두들겨 맞을 때도 쓰기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무려) 싸이월드 일기장에 달린 댓글들을 보며 아, 그래도 써야지, 쓸 거야, 쓰자 했던 것이다. (...) 

내가 직장인이 되고 나서 얼굴마저 희미해진, 각기 다른 동창 둘에게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같은 반일 적에 가볍게 농담 따먹기 정도나 했던 친구들이었고 두 사람 모두 친했다고 하기엔 좀 머쓱한 사이였다. 연락은 각각 2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왔고 두 사람 모두 내 싸이 일기와 블로그 일기를 잘 읽고 있다고 말했다.  둘 다 남자애들이어서 내 일기의 어떤 점이 그네들의 감수성(!)을 자극했을까 궁금했지만 그들은 다만 그간 (나 모르게) 자신들이 쌓은 나와의 내적 친분으로 자신들의 이야기(고민)를 털어놓기에 여념 없었다. 당시의 그들은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예고 없이 연락을 받은 나로선 '먼 당신들'이었으므로 조금 어색했고 당황했지만) 아무튼 그런 식의 반응들이 이제껏 '쓰는 욕망'의 토대가 되어왔다. 


작년 여름에 계약한 에세이를 쓰고 있다. 올해 6월 출간을 목표했고 계약서를 쓸 때만 해도 담당 편집자에게 해를 넘기지 않고 마감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제껏 남이 그려준 설계도면대로 집 짓느라 스트레스였는데 이제 내 마음대로 집 지을 수 있어서 참 좋다고, 내 편한 집을 짓겠다고 꺼드럭거렸다. 

그렇게 조금씩 써나가고 있었는데(결국 해는 넘겼고)... 문득 설계도면도 없이 벽돌을 쌓는 느낌이 들었다. 벽돌만 쌓으면 모르겠는데 갑자기 나무도 쌓았다가 패널도 세웠다가... 그러다 부쉈다가... 흙 바르고 똥 바르고 난리도 아니다. 기초공사도 안된 상황에 내 집을 보고 손뼉 쳐 줄 사람들을 떠올리고 그들의 호명에 와다다 달려가 '건축대상'을 받을 상상을 한다. 그리고는 봉준호 감독처럼 멋진 수상 소감 한마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재작년에는 어떤 기운이 깃들어서 그렇게 글을 갈겼을까. (사실 그냥 써야만 할 것 같았다.) 독자를 의식하고 썼지만 계약서도 없이 그 정도 분량으로 '갈기고' 완독자 두 명에 놀랐다면  (지금 내 집필 상황에 견주어) '혼작'으로 쳐줄만하다. 

그러니까 내 고민은... 마음대로 집을 짓자니 소슬바람에 무너질 초가삼간이 될 것 같고(심지어 유경험) 남 보기 좋은 집을 짓자니 솔직히 방법도 모르겠는데 억지로 짓는 집 같고,  집장사가 짓는 천편일률의 집 같고.... 그런데 건축 시공사랑 이미 계약은 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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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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