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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혜 Nov 03. 2020

11월 2일

춥잖아요 


한기를 느끼며 잠에서 깼다. 평소 이부자리에 덮는 이불 외에 여분의 담요 하나를 더 두기에 그걸 끌어다가 몸을 한 번 더 감쌌다. 그러다 또 추워서 깼다. 덮었던 담요가 발치에 있었다. 언제 이걸 걷어냈지... 다시 끌어다 덮었다.  그런데 또! 깼다. 역시나 이번에도 담요가 발치에 있었다. 에이그... 다시 끌어다 덮었다. 

그리고 또다시 깼을 때, 그 모든 것이 꿈이었음을 알았다. 담요는 한번도 핀 적 없이 내 옆에 다소곳이 개어져 있었다. 영화 인셉션처럼 꿈은 다층적인가. 깊은 꿈, 덜 깊은 꿈, 가벼운 꿈...여러 겹의 꿈을 깨고 또 깨야 현실을 의식하는걸까. 


엊그제는 공항으로 향하는 꿈을 꾸었다. 공항철도를 이용하려하는데 옥수역을 닮은 역사 플랫폼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헷갈리다가 결국 공항에는 닿지도 못하고 비행기를 놓쳤다. 들끓는 불안에서 허탈한 포기에 이르는 감정이 실제처럼 생생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화면 전환되듯 펼쳐진 다른 꿈에서 나는 아마도 일본 북해도에 있는 어느 산장 스타일의 숙소에 묵고 있었다. 바깥은 눈세상이었다. 눈으로 덮인 동산과 눈이 무겁게 쌓인 침엽수 몇 그루만이 서 있었는데 아주 아름다웠다. 로비로 짐작되는 곳에 일본인 직원과 백인 여행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추위 때문에) 싫으면서도 (풍경 때문에) 좋은 곳이야"라고 말했다. 괄호 안의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꿈이니까 찰떡처럼 알아들었겠지 뭐. 그와중에 아이 해이츄 아이 러뷰 라는 노래를 떠올렸네... 이 꿈을 꿀 때는 덜 추웠나보다.  


집을 보러 다녔다. 중개인들이 보여주는 집들은 죄다 바닥이 후끈후끈했다. 다들 이렇게 따뜻하게 산단 말이야? 아직 한겨울도 아닌데? 내방보다 상대적으로 서늘한 작은방과 거실을 주로 쓰는 동생이 가볍게 투정하듯 말했다. "우리집도 보일러를 틀면 그렇게 돼." 

그야...당연히...

추우면 언제든 보일러 돌려. 난 안방을 써서 너만큼 추운걸 모르잖어. 

지난주에 부모님댁에 갔는데 한낮에도 한기가 느껴져서 차라리 밖에 나와 가을볕을 쬐는게 훨씬 따뜻했다. 어릴 적 기억중에 춥다고 투정 부리면서 누운 채로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까...춥게 사는 게 내력인 집안에 익숙해졌는데 그렇다고 추운건 또 몸서리치게 싫다. 그래서 내가 태어난 계절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피한지로 동남아 어드메로 도망다니기 바빴는데 이젠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다. 코로나가 아니었대도 집을 구해야 하는 마당에 어디로 내 뺄 여력이 되지 않는다.

서울에 살 땐 방을 보러 다닌다고 했는데 안성에 내려와선 집을 보러다닌다하니 사정이 나아졌다고 해야 할까. 내 의사와 무관하게 '또' 집을 옮겨야하는 상황에서 울적하다고 해야할까... 전자는 지금의 우울함을 조금이라도 떨치고싶어 하는 말이다.  곧 입동이다. 여행작가 겸 임차인의 신분으로 올해 겨울은 진입부터 만만치않다. 계절이 길텐데 넘어야 할 허들이 끝도 없다.


부모님 댁에서 돌아오는 길에 동생의 차에서 카세트 테이프를 들었다. 테이프라니... 동생이 중고차를 사고 카세트 테이프는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작동이 안될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다 혹시해서 부모님댁 창고방(오래전에 내방이었던)에서 테이프 하나를 가져와 플레이했는데, 웬걸. 카오디오가 이렇게 빵빵하단 말이야?

케이스도 없이 '누구 앨범이지' 싶은 테이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나왔다. 1999년 윤종신의 노래. 1999년이면 내가 중2때다. 그때 내가 윤종신을...? 

'이제 다시 놓치기에는 허물어지는 내가 두려워서 잡은 그대 손을 꼭 쥐어보네 이젠 내게 머물러요..'

그 노랠 들으면서 창밖을 보는데 뭔가, 온탕에 몸을 담구듯 몸이 사르륵 녹는 기분이었다. 

내가 많이 울었던 날, 엄마는 나를 대중탕에 데려갔다. 그때도 중2때였다. 중2가 무섭긴 무섭네... 무튼 그때 이후로 울적할 때면 괜히 커다란 온탕이 있는 목욕탕에 가고 싶다. 


'멋쟁이 희극인' 박지선 씨의 소식에 황망했다. 많은 유명인들이 운명을 달리해왔지만 그의 요절은 그 누구보다 마음이 아리다. 그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굳이 찾아보진 않아도 어쩌다 그가 나오면 참 반가웠고 또 많이 웃었다. 참 좋은 사람 같아서... 그곳에서는 아프지 않길,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 만큼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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