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정말 오랜만에 KTX를 타고 대구에 출장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의자와 의자 사이에 있는 콘센트에 핸드폰 충전기를 꽂으려다 충전선을 놓쳤다. 뒷좌석에 앉은 젊은 여성의 손이 불쑥 내 쪽으로 들어왔다. 선을 제 손에 쥐어달라는 제스쳐. 콘센트가 뒷좌석에서 좀더 가깝긴했다. 동그랗게 두 눈을 뜬 그녀를 보며 나는 괜찮다고 말했고 두번 째 시도에선 선을 놓치지 않았다. (입도 웃고 있었는데 마스크에 가려져 알았을까 모르겠네)
아주 잠깐의 순간이었음에도 '내민 손' 덕분에 귀가길 내내 기분이 좋았다.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앞에서 두서너번 선을 놓쳐야 겨우, 소심하게 손을 내밀지 않았을까.
그전에 사소하나마 기분 좋은 태도는 또 있었다. 같이 일하기로 한 스텝이 약속시간에 맞춰 보낸 문자에 '천천히 조심히 오시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사실 그보다 일찍 도착해 있었지만 먼저 온 사람의 배려가 느껴지는 문장이 좋아 '빨리, 조심히 갈게요' 라고 답하고 싶었다. '천천히', '조심히'라는 부사를 예전에는 나도 많이 썼던 것 같은데. 요샌 잘 쓰지 않는다.
또 통상 업무 현장에서 주고받는 문자란 "저는 도착했습니다. 오시면 연락주세요" 정도로 간결하고 굳이 그 뒤에 "천천히 조심히 오세요"같이 다정한 사족은 붙이지 않으니까.
누가보면 뭐 별거라고, 당연한 거 아닌가 생각할 수 있는 소소한 행동들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내 속이 좁아져서인가, 세상이 각박해져서인가, 할 수 없이 '거리 두기'를 해야하는 시기여서인가. 퍽 기분이 좋은 순간들이었고 그 순간들을 어딘가 적고 싶어서, 여기 이렇게 쓴다.
좋은 사람은 언제나 곁에 있어왔다. 어제처럼 잠시 잠깐 내 곁을 스쳐간 좋은 사람들도 있고 나를 물심양면으로 챙겨준 사람들도 있다. 기꺼이 내밀어준 손, 따뜻한 마음들을 덥썩, 염치없이 다 받아왔다. 나는 그처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지 못하고 되고 싶다고 꿈만 꾼다. 손 내민적도 없으면서 나를 좀 좋은 사람으로 봐달라고 욕심만 부린다.
여러가지로 여유가 없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하루는 살만하다가도 또 하루는 열패감에 휩싸인다. 그런 나날의 반복이다. 지금 느끼는 스스로의 한계는 코로나가 아니었대도 반드시 찾아왔을 것이다. 문장 한 줄부터 하루를 지배하는 정신상태까지 너무나 형편없다. 후져도 이렇게 후질 수가 없다. 그걸 이제서야 하나씩 깨닫고 있는 것도 기가 막히다. 괴롭다. 우선 인정 욕구를 버리고, 부덕과 무지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알량한 자존심이 자꾸 촉을 세우지만 버려야한다. 그래야 새로워질 수 있다. 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