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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적 직장인 May 01. 2020

홀리데이

8살의 어린이날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아, 나는 지금 치킨이 너무 먹고 싶다. 고민하다 포기하고 뿌듯함을 느낀 게 5분 전이었던가. 양치까지 한 번 더 하면서 식욕을 떨치려 했건만 이 아둔한 머리에선 바삭하고 육즙이 자르르 흐르는 닭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어젯밤 목에 피 맛이 나도록 뛰었던 러닝머신 생각도 해보고, 괜히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잠옷을 들춰 허리선을 확인해봐도 아무 생각이 안 난다. 배를 꾹꾹 눌러보니 이 정도면 꽤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이럴 땐 카드 명세를 보는 게 최곤데. 이런. 5월 첫 주라고 지갑도 두둑하다. 이 식욕은 왜 자꾸 밤에만 떠오르는 것일까. 밤이 뭐길래. 치킨을 먹어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으면 뒤돌아보지도 않고 시킬 텐데, 오늘은 그럴만한 근거조차 없다. 밥도 두 끼 다 먹었고 낮에 빠삐코랑 포카칩도 먹었다. 그리고 가장 죄책감이 들게도 전혀 배가 고프지가 않다. 하 방법이 없다.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쯤 스치는 생각 하나, 오늘은 어린이날. 이건 아무래도 치킨을 먹어도 되는 홀리데이가 아닐까.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를 먹고 부활절엔 삶은 달걀을 먹는 것처럼, 사실 어린이날은 치킨을 먹는 날인 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대부분의 어린이날엔 미술관에 갔다. 나는 사람이 많은 걸 귀찮아하는 어른스러운 어린이라 미술관 가는 걸(특히나 사람들 득실거리는 빨간 날엔!) 정말 싫어했는데 엄마는 징징거리는 내 등짝을 후드려치며 이쁜 원피스 같은 걸 입혔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붉은 장미색에 부푼 퍼프 소매가 달린 그 원피스. 그 옷은 나는 싫어하고 엄마는 좋아하는 옷의 대표선수라 입을 때마다 한바탕 했다. 엄마는 나들이 날이면 종종 그걸 입혔고 그러면 어린 딸은 치마 입기 싫다고 벗고, 레이스 싫다고 벗고, 나가기 싫다고 또 벗고, 세 번쯤 벗어버리다 한 대 맞곤 했다. 뒤돌 때마다 애기가 벌거벗고 입이 댓 발 나와 있으니 엄마는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아마 Ctrl s를 누르지 않고 꺼버린 Ai파일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전쟁 같은 실랑이 후에 한바탕 울고 집을 나서면 원망스럽게도 늘 해는 쨍쨍했다.

찰캉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지하철을 타고 내리면 현대미술관에 도착. 덕수궁 돌담길을 지날 때마다 엄마는 어떤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결혼식에 늦을 뻔한 그 날. 한 손엔 웨딩드레스 자락을, 한 손엔 외할아버지 손을 잡고 뛰었던 돌담길. 비가 내려서 울고 싶었다고 말하는 동시에, 결혼식에 비가 내리면 길일이라고 하더라는 속설을 얘기를 오백 번도 넘게 들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 날이 길일이면 왜 둘은 맨날 싸울까 하는 딴생각을 했다. 책에서 이게 동상이몽이라 하던데. 동상이몽, 동그라미가 네 개나 들어가는 이쁜 모양에, 안 이쁜 뜻을 가진, 그러니까 누가 했는지 참 잘 만든 이 말이 오늘의 단어구나 따위의 딴생각도 했다. 그러다 이렇게 어려운 말을 아는 나를 자랑하고 싶어서 그날의 사자성어를 계속 넣어서 말했다.

전시는 항상 그녀 취향인 르누아르나 샤갈의 것과 같은 따뜻한 그림을 보러 갔는데, 으엑 난 지금도 그 사람들을 싫어한다. 취향의 한결같음이란. 지루하고 따분한 그림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엄만 내 옆에서 이게 얼마나 좋은 그림인지에 대해 떠들었다. 놀이동산 가자고 찡찡대면 이게 얼마나 있어 보이는 어린이날이냐고 했다. 나중에 자기한테 고마워할 거란 얘기를 덧붙이면서. 지금 생각하면 맞는 말인데 그때의 내 머리에는 햇빛 받으며 누워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 엄마 무릎 베고 잘생긴 배우 나오는 드라마나 퍼질러 보고 싶다.’


그 시끄럽고 커다란 미술관에서 앞사람은 왜 안 움직일까에 대해 생각하다가 엄마를 놓치면 책 <누리야 누리야>의 누리가 되는 생각으로 넘어갔다. 누리는 부모형제 하나 없는 천애고아인데 인생이 풀리려고 하다가도 늘 망가지는 슬픈 운명의 여자애다. 하나뿐인 분홍색 티셔츠, 너무 많이 입어서 나중에는 회색이 다 돼버린 것을 기워입는 아이. 쫄쫄 주린 배를 쥐고 서커스단에서 곡예를 넘는 불쌍한 누리. 나는 미술관에만 가면 하루에도 열 번은 누리가 됐다. 누리가 울고 싶어질 때쯤 엄마가 나타났고, 나는 다시 스텔라로 돌아와서 금세 잊고 짜증을 냈다. 엄마, 나 샤갈 싫어.

전시를 다 보고 나면 우리는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했다. 우리 가족은 광화문 교보문고의 단골이었는데 사실 광화문 교보문고보다도 그 앞의 <뽀모도로>라는 식당의 파스타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곳의 단골이라 보는 편이 옳았다. 휴일에는 뽀모도로 앞에 줄이 평소보다도 더 길어서 1시간은 넘게 기다려서 파스타를 먹었다. 행복하게도 그곳의 스파게티는 고급 레스토랑처럼 손톱만큼 이 아니라 시장에서 사 먹는 잔치국수만 하게 나와서 대기시간으로 인해 주린 배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누구는 한국식 파스타라고 폄하하지만, 크고서 수도 없이 유명한 파스타 집에 가봐도 내 입맛에는 역시 그 집만 한 데가 없다. 이미 시킨 후라 고백하건대. 사실 내게 어린이날은 치킨이 아니라 스파게티를 먹는 날이다.

스파게티를 배 터지게 먹고 나면 그제야 교보문고 차례가 왔다. 교보문고는 다 비닐로 만화책을 칭칭 감아놔서 책은 못 보고 나랑 동생은 늘 교육 교구 코너에서 놀았다. 요즘의 토이저러스 같은 곳이랄까. 거기에는 우리 집처럼 나들이 나온 애들이 많아서 다 같이 칠교놀이 같은 걸 할 수 있었다. 다양한 놀이가 많아서 태어나서 첨 본 애들이랑 동네 친구인 양 놀았다. 그러다 잠깐 책 사러 간 엄마 아빠가 너무 안 온다 싶으면 나는 늘 딜레마에 빠졌다. 여기서 벗어나 부모님을 찾으러 가면 길 잃어서 누리가 될 것 같고, 기다리기만 하면 엄마 아빠가 우리를 까먹고 집에 가서 누리가 될 것 같아서. 난 누리는 싫은 데, 더 놀고는 싶고. 다른 애들이 하나둘씩 부모님과 떠나갈 때면 기린처럼 목이 길어지면 좋을 텐데 생각을 했다. 기린이 된 누리는 좀 멋있을 것도 같은데. 사실 나는 딴생각을 하다 엄마를 종종 놓치는 것이 일상이라 유치원생 때 장래희망은 기린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칠 지경쯤 엄마 아빠는 책을 두세 권 사 들고 돌아왔다. 부모님은 각자 한 손에는 나랑 동생 손을, 다른 손에는 책이 든 종이백을 들곤 집에 돌아왔다. 다 같이 집으로 돌아와 누우면 그렇게 매년 있는 어린이날이 끝이 났다.

 이렇게 다시 생각해보니 매년 있는 어린이날은 얼마나 고역인가 싶다. 어딜 가나 징징대는 아이들, 길게 늘어선 줄, 지긋지긋한 레퍼토리. 그래도 나름 우리 부모님은 잘 타협을 한 것 같은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 나한테도 너무 피곤한 루트다. 9시까지 나와서 1시간 지하철 타고 미술관, 2시간 보고 30분 또 이동하면 점심시간, 밥 먹고 5시까지 서점 그리고 집까지 또 한 시간 지하철. 이것이 정녕 어린이의 루트란 말인가.

앗 벌써 종이 울린다. 치킨 받으러 가야겠다. 어찌 됐든 결론은 지난 어린이날에 따라다니느라 좀 힘들었으니 오늘은 엄마카드로 좀 늦게 보상을 받는 날이란 거다. 엄마는 모를 테지만. 스파게티를 안 먹었으니 치킨이라도 먹어야지. 이상 어버이날에 꽃 하나 준비하지 않은 불효녀였다. 아마 토실하게 살이 오른 내 얼굴이 선물이 되지 않을까?


May 5th,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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