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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적 직장인 Jul 16. 2020

세상은 왜 이리도 빠르게

잠실 교보문고 탐방기


학창 시절, 나는 놀랍도록 문구류에 욕심이 없었다. 필통도 없이 샤프 하나 챙기거나 그조차도 까먹은 날에는 책상 서랍이나 사물함을 뒤지곤 했다. 불쌍할 정도로 대충 살았다. 다행히 문구 덕후인 친구는 있었던 덕에 걔네가 나한테 뭐라도 버리면 감사히 받아서 쓰다가 잃어버리는 식으로 학교를 마쳤다.

친구들이 펜을 주는 이유는 필통에 더 이상 공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핫트랙스에서 쇼핑을 열심히 한 다음날, 새로 ‘하이테크’며 ‘젤리 롤’을 넣어야 하는데 도무지 자리가 안 날 때면 내게 왔다. 어쩜 그 큰 필통에(펜을 좋아하는 애들은 꼭 필통도 겁나 컸다) 그렇게 꽉꽉 채울 수 있었을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핫트랙스에서 살 것이 없는데. 필통엔 4색 볼펜 한 자루랑 안경이 전부인걸.


잠실 교보, 고전문학과 라노벨사이.


근데 오늘은 그런 나조차 조금 흔들렸다. 리뉴얼 공사가 끝난 잠실 교보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핫트랙스가 제일 괜찮게 바뀌었더라. 약간 신났다. 결과적으론 책만 3권 사 왔지만, 다홍색 크로스백이랑 킥보드 타는 다람쥐 패치워크 앞에선 위험했다. 마음이 아주 자암깐 살랑거렸다. 교보도 이쁘게 해놓긴 했는데 뭐랄까 너무 요즘 느낌이라 싫었다. 내게 교보는 언제나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있는 듬직함이 매력인 가게였는데, 공간 넓게 넓게 쓰고 큐레이팅 된 책 위주로 갔다 놓으니까 안정감이 사라졌다. ‘여기에 가면 원하는 책을 살 수 있어!’라고 믿을만한 장소가 아니다. 전에 비해 비치된 책이 적어지고, 앉아서 읽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야자를 째고 놀러 갔던, 헤어지고 나면 언젠가 그이가 말했던 책을 찾아 헤매던, 그때의 서점은 이제 더 이상 없다. 좋아했던 가게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계절이 바뀐다. 세상이 자꾸 바뀌어간다. 몇은 좋고 몇은 싫다. 나는 이제 학교 가서 잠도 안 자고(사실 학교를 안 가기 때문, 대학에서도 꾸준히 졸았다) 아침 7시면 눈이 떠지는 으른이 되었다. 그런데 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걸까. 현대에 미련탱이로 사느라 쉽지 않다. 어느덧 2020년도 절반을 지나고 있다. 아 믿기지 않는다.


오늘 산 책. 앞에 소설 두 권은 못해도 10번 넘게 읽었다. 이제는 소장할 때가 됐다.



July 16th,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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