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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적 직장인 Oct 02. 2019

What’s your hobby?

에세이 '5학년실화냐' 2편

 과제와 작업, 혹은 생에 치이다보니 어느순간 취미는 흐릿해져간다. 그러나 삶의 낙을 인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고 싶어서 한다기보단 해야 해서 하는 일이 24시간 중에서 8시간은 되기 때문에, 그마저도 사회인이 되면 점점 늘 것이기 때문이다. ‘이 거지 같은 일이 끝나면 뭐 하고 놀아야지’를 생각하려면 그 ‘뭐’를 찾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다 같이 알림을 꺼두었던 스크린 타임에 들어가자. 인지하지 못했던 낙을 찾을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취미는 무엇인가. 


오늘자 이성경의 스크린타임. 소셜네트워킹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노래의 한 소절처럼 나는 ‘내일이 올 걸 알아도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1인이라, 절친 Xr과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곳은 <instagram> 이다.(온갖 웹서핑을 다 하는 safri를 제외하고는) 그 이유는 관리하는 인스타그램 계정만 5개여서다. 다들 이 사실을 알면 놀라지만 2014년 말부터 사용하기도 했고 여러번 계정을 삭제해서 남은게 이 정도라고 변명하겠다. 이 글을 포스팅하는 skkusoa 계정 외에도, 온갖 일상과 작업물을 올리는 본 계정, 여행 계정, 다이어트 계정, 필름사진 계정이 있다. 원래 그림 계정도 있었는데 비밀번호 한번 바꿨다가 그 번호를 까먹어서 못 쓰고 본 계정에 올린다. 어찌 됐든 인스타그램은 이처럼 내 취미를 아주 단적으로 나타낸다.


이 중 여행 계정은 본 계정만큼 열심히 사진을 올리는 편이다. 대학진학 후, 다녀온 나라 개수로는 16개국, 여행 횟수로는 5번이니 여행도 내겐 취미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 “여행은 준비하는 시간부터 회상할 때까지”라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늘 여행하는 중이다. 여행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파트는 엽서를 보내는 시간이다. 우리는 장문의 카톡은 부담인, 간단한 문장은 이모티콘으로 보내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와중에 엽서라니. 우체국을 굳이 찾아가서 엽서를 보내는 행위는 너무나 전근대적이며 어디 셰익스피어시대에서나 할 법한 옛날 일이다. 돈과 시간도 든다. 솔직히 남의 집주소는커녕 전화번호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 아닌가. 그러나 나는 조금만 오래 해외에 나가있어도 친구에게 엽서를 보낸다. 엽서를 보내기 전, 주소를 물어볼 겸 연락도 하고, 그나 그녀가 좋아할법한 예쁜 엽서지를 골라 짧은 편지를 쓴다. 그 후, 온 적도 없고 아마 앞으로도 갈 일없는 우체국에 가서 새로운 우표를 사서 붙이고, 우체국 직원과 짧은 대화도 한다. 이 작고 번거로운 취미엔 뭔가 설레는 맛이 있다.


또 다른 계정의 주제인 필름사진도 마찬가지다. 중고품밖에 구할 수 없기에 카메라를 사는 것 자체도 고생이고, 필름을 사는 것, 사진을 찍고 36컷이 다 찰 때까지 인내하는 것, 현상스캔을 하러 사진관에 가고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까지 전부 돈과 시간이다. 그러나 구닥이라던가 vsco 등의 보정어플을 쓰면서도 나는 필카를 놓지않는다. 단순한 감성사진 이상의 것이 있기 때문이다.(솔직히 구닥을 쓰는 순간 그다지 ’감성’사진이 되지도 못한다) 백날 쳐다봐도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는 휴대폰에 비해 매번 몸통을 열어 필름과 건전지를 넣는 카메라는 어쩐지 직관적이다. 번거로운 과정과 제약들은 뭔가를 직접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게다가 디지털이 디폴트인 시대에 아날로그란 아주 흥미로운 캐릭터여서 특별한 순간을 기록하기엔 그만한 뽕이 없는 것이다. 물론, 사진 자체의 색감과 퀄리티가 보정어플이 따라오지 못할 수준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필름카메라로 찍은 명륜캠 금잔디광장과 학생들.  이런 감성은 아무래도 아이폰으로는 안담긴다.


이렇듯 내가 취미를 기록하는 방식은 디지털일지언정, 본질은 아날로그다. 이유는 단순히 그게 아주 매력적이고 재밌어서다. 비단 필카나 엽서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AI를 이용한 큐레이팅 서비스가 대세인데도 애플은 전문가를 앞세운 전통적인 에디팅을 고집한다. 그것이 효율은 떨어질지언정 더 나은 퀄리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종이책보단 킨들이, 다 무너진 아파트보단 새 것이 훨씬 기능적으로 나을지 모른다. 그러나 요즘의 트렌디한 감성, 소위 말하는 ‘인스타갬성’ 중에서 반은 아날로그다. 다 무너진 아파트 앞에서 누구는 영화를 찍고, 누구는 인스타라이브를 켠다. 그것이 새롭고 재밌는 컬러를 가졌기 때문에, 필름이 디지털파일보다 더 나은 체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렇게 디지털세상에서 아날로그적인 취향은 살아나간다. 


그러나 시간의 논리는 디지털이냐 아날로그냐 할것없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사랑할 것들이 계속해 사라져가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필름은 작년부로 단종됐고, 자주 가던 커뮤니티 사이트는 올해로 문을 닫았다. 중학생때 아이돌 cd를 열심히 사모으는 나를 보고, 엄마는 부럽다고 말했다. 이제 자기는 그만큼 미친 듯이 좋은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 때는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했었는데 요즘에서야 실감한다. 사랑할 만한 대상뿐만 아니라 이 애정자체도 사라져간다. 그래서 우리는 어서 사랑할 만한 것들을 찾아야 한다. 이 애정마저도 시한부이기에. 조금이라도 늦기 전에, 이 볕좋은 날 셔터를 누르러 나가야겠다.


https://skkusoa.com/featured-story/whats-your-hobby/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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