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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적 직장인 Oct 02. 2019

끝의 시작

에세이 '5학년실화냐' 1편


 앳된 얼굴의 파마머리들이 삼삼오오 들떠 돌아다녔고, 밤이 되자 열댓 명쯤 되는 무리가 술집 앞을 서성였다. 아마도 술집 안에선 “에프엠~ 에프엠~”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 분명했다. 취준생이 된 친구들은 기사 시험 및 각종 자격증 따기에 한창이다. 달력을 볼 필요도 없었다. 바야흐로 3월이 다가온 것이다.


이번 주, 동생은 첫 수강 신청을 마쳤다. 녀석은 18학점 중 9학점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반제로 운영되는 수업 빼고, 남들이 안 듣는 교양수업 주운 것 빼고, 다 실패했다는 소리다. 동생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말했지만, 저녁 식사를 하면서 그 얘기를 5번도 넘게 떠들었다. 엄마가 다른 주제를 꺼내면 “수강신청 어쩌지”, “아냐 어떻게든 되겠지”, “근데 괜찮겠지?”, “아 근데 시간표 어쩌지”를 무한 반복했다. 결국, 나의 시끄럽다는 짜증을 듣고서야 그 짓을 그만두었다. 사실, 그의 마음 속 어딘가에는 ‘복구할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희망이 남아있을 것이다. 아예 가망조차 없다면 떠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동생의 첫 학기는 망했다. 한 과목도 아니고 3과목이나 주워야 하는 것, 그리고 이미 남들이 듣지 않는 수업을 수강 신청했다는 것만으로도 회복의 여지는 없다. 성적은 3월부터 천천히 보이기 시작한다. 단지 그 사실을 새내기들은 모를 뿐이다. 


흔한 성균관대 건축학과 1학년의 망한 시간표


이렇게 종종 나는 실체를 보지 않고 무언가를 알게되곤 했다. 사실, 살면서 무언가의 실체를 곧바로 알 수 있는 일은 극히 적었다. 그래서 늘 더듬더듬 겪으며 유추하는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나쁜 것들이 그러했고 좋은 것들 역시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동생에게 말은 안 했지만 나 역시 수강 신청의 쓴맛은 수도 없이 봤고, 눈을 뜨니 12시였더라는 우스갯소리의 주인공도 되어봤다. 겪어봤기 때문에 동생의 이번 학기쯤은 아는 것이다. 당연히 수강 신청에 망하고도 성적을 잘 받을 방법이 있다. 동생은 아무래도 그 쪽에 베팅을 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나는 그 것이 나나 동생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쪽에 걸겠다. 물론 꼴랑 24세인 내가 뭐든지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저 내가 아는 것은 그에겐 대학 생활의 시작이, 내게는 끝이 시작되는 중이라는 것이다. 


비록 대학 생활 끝자락까지 왔지만, 동생을 비웃는 게 미안할 정도로 난 아무것도 모르고 그대로이다. 6년 전의 그 소녀는, 모든 고3이 그러하듯, 대학에 가면 많은 것이 바뀔 거라 착각했다. 체중감량은 물론이고, 너무 당연하게도 25세면 어른이라 꿈을 향해 정진하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정진’이라니. ‘속된 생활을 버리고 오로지 열중해 나아간다’는 뜻이지만, 그때는 ‘오로지’란 말의 무게를 모르고 미래를 그렸다. 결국, 2019년의 나는 몸무게 일의 자리까지도 그대로다. “집 가고 싶다”거나 "이번 학기는 밤 안 샌다" 따위의 입버릇은 여전하고 속된 생활을 일삼는다. 자주 무리한 계획을 세우고 실패하고, 꿈은 늘 있다가도 사라져 버린다.


그래도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좀 더 겪었다는 것이다. 하면 된다가 아니라 안 될지도 모르지만 안 해보면 모른다는 깨달음이다. 앞서 말했듯 무언가의 실체를 바로 알게 되는 일은 ‘행운’이라 불릴 만해서, 늘 조금이라도 겪어보고 유추해야만 했다. 친구나 애인, 하다못해 공부까지도 겪기 전까진 나와 맞는지 알 수 없었고, 이제 좀 알 것 같다 싶다가도 뒤통수를 쳤다. 그렇게 학교에 처음 들어온 후, 재밌어 보이는 동아리는 다 가본 끝에 1학년 겨울방학끝엔 맞는 자리를 찾을 수 있었고,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만났기에 2학년이 다 끝날 때쯤에야 겨우 단짝이라 불릴만한 친구가 생겼다. 가만히 있었다면 나는 정말 이 청춘에서 가져가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본인은 지난 5년(내년이면 대학’시절’이라 불릴)을 풀어낼 것이다. 그 기록들이 ‘쟤보단 낫지’ 하는 위로가, 혹은 ‘쟤도 하는데’ 하는 호기로 읽혔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기록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다. “애쓰는 것들은 다 사랑스럽다”는 말을 좋아한다. 어차피 나도 내 주변도(아마 네 주변도) 다 똑같이 애쓰며 살아간다. 아등바등 뭐 하나 쉬운 것 없었다. 이 빌어먹을 대학 생활, 드디어 나도 끝이 시작되는 중이다.


https://skkusoa.com/featured-story/%eb%81%9d%ec%9d%98-%ec%8b%9c%ec%9e%91/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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