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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는보리> 리뷰, 청각을 잃는 게 소원이라고?

이보다 단단한 가정이 또 있을까


보리는 장애를 갖고 싶어하는 소녀다. 이유는 자신을 제외한 가족 모두가 농인이기 때문이다. 혼자 다른 삶을 살아가는 보리는 집에 있을 때마다 소외감을 느낀다. 그래서 매일 '소리를 잃고 싶다'는 소원을 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것은 불편하다. 이는 저명한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그럼에도(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뛰어넘는 성공(행복)담을 그린 작품들이 다수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비장애인의 삶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룬 영화들은 그리 많지 않다.


<나는보리>는 코다(CODA,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의 삶을 다룬 점에서 의미 있는 영화다. 같은 소재를 다룬 작품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접근한 점이 흥미롭다.


보리는 청각 장애를 가진 부모와 남동생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때문에 사회와의 소통은 보리의 몫이다. 이를테면 기차표를 끊거나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것 등이 해당된다. 한 마디로 보리는 사회와 가족을 이어주는 든든한 버팀목 같은 존재다. 하지만 정작 보리는 스스로를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수어를 배워본 적 없는 보리는 원활하지 않는 가족 간의 소통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아빠와 엄마의 애정을 더 받는 듯한 동생에게는 질투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도 있다.



그래서 보리는 청각 잃기를 자처한다. 이어폰 볼륨을 최대치로 높여 듣는가 하면, TV에서 난청에 시달리는 해녀의 모습을 보고 바다로 뛰어들기까지 한다. 이토록 보리의 소원은 간절했던 것이다.


<나는보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의 고충을 그러모은 작품이다. 영화는 처한 상황은 다를지라도 저마다의 고충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본질을 보여준다. 물론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확실히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고충을 알 리 없다.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나마 농인의 입장이 되어본 보리의 일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전부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라(Put yourself in other person)'는 외국 속담이 있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 최선이다. 장애를 갖고 싶었던 보리, 여전히 소리를 잃고 싶다고 생각할까.



영화를 보며 '주인공 이름이 왜 보리일까'라는 생각에 휩싸였다. 보리네는 서로를 보면서 소통하는 특별한 가정이다. 따라서 보리(see, 보다)라는 의미의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이 가족이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은 들여다보는 것이다. 여느 가정들보다 서로에게 집중하는 단단한 가족이다. 이들보다 서로의 표정과 몸짓에 집중하는 가정이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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