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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리뷰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해원을 중심으로, 그녀와 얽힌 사람들과 일상을 전개된다. 캐나다로 떠나는 엄마와 5년 만에 재회하여 잠시 데이트를 나눈 후 엣(혹은 현) 애인 성준을 만난다. 성준과 추억이 서린 북촌거리와 남한산성을 오른다. 추억의 장소들에서 우연히 마주한 사람들과 그들이 생각하는 해원의 시선을 통해 관객들은 해원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


북촌거리의 '사직동, 그가게' 앞에서 판매되는 책의 가격이 구매자를 드러내는 징표가 되는 상황들을 통해 감독은 단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실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해원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평가)이 존재하는 것처럼 사물이든 사람이든 단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예쁘다'라는 표현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 속 여자들을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표현 방식이다. '예쁘다'의 정의와 기준 역시 모호하고 다분히 주관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을 너무나 쉽게 내뱉는다. 확실한 개념도 모른채 말이다.

그렇다면 해원이 스스로 정의내리는 자신은 어떤 인물일까. 그녀 역시 자신을 모른다. 엄마와는 5년 동안 접촉이 없었고, 곧 이별한다. 그녀의 아버지 또한 부재에 가깝다. 그녀에 대한 진실은 상당량 제거돼 있지만 이 영화의 제목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딸'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제목처럼 해원, 그녀는 누구의 딸도 아니며, 그래서 타인으로부터 그녀는 '모호한 인물'로 비춰진다. 소위 '-카더라' 식에 의해 해원이 이미지화된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90분 동안 지켜봤던 해원의 일상이 실재가 아닌 꿈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해원이 엄마를 만나기 전 잠들었던 이후의 꿈을 본 것일까, 아니면 엄마를 만나 데이트 한 이후의 시간들을 본 것일까. 심지어 해원도 '-것 같다'라는 모호한 말로 영화의 엔딩을 마무리한다. 이를 통해 시간의 개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즉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우연과 꿈, 타인에 의한 다양한 시선, 기억과 추억, 시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다양한 코드가 어우러진 영화로 볼 수 있다. 결국 이 모호한 것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며, 개인을 명명할 수 있는 것은 이름 뿐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삶의 다양한 조각들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 다시 봐도 새롭고 다른 작품들을 봐도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것 또한 작가감독의 작품들이 지닌 매력이다. 이 영화를 보니 <다른 나라에서>와 <우리 선희>가 보고싶어졌다. 그리고 '사직동, 그가게'에 들러 차 한 잔 하고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카페들은 소박하지만 방문하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조만간 찾아가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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