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안
사 차선 도로 확 뚫린 그 길을 같은 시간 같은 저녁 매일 오갔다 깨끗한 물이 흐르는 천변을 지나 다리 옆 가로수 낮은 화단으로, 여름이면 푸른 잎들이 내 허리 키 높이만큼 무성했다 신호등 불빛이 초록빛으로 바뀌면 나는 바삐 그 도로를 무심히 건너갈 뿐
서늘한 바람 부는 여느 출근길 내 허리 키만큼 새빨갛게 물든 나무 이것이 무엇인가, 향기도 소리도 없이 빨갛게 물들어 아찔하게 놀라는 화살나무
한 해 꼭 한 번만 물들기 위해
지난 계절을 견뎠다
마디마디 너른 사이 잎은
온 계절을 견디기 위한 차선이었으니
바람처럼, 꼭 한 번만 붉어졌다
#시작 노트
가을날 산책길에서 자주 만나는 화살나무는 매혹적이다
붉은 아름다움의 절정
햇살이 화살나무 잎을 비추면 그 매혹에 더더욱 빠져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