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물건이 당신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그런데 좋은 생각과 좋은 행동은 당신을 "즉시" 좋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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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의 사람들이 좋은 집이나 물건 같은 유형적 대상들을 얻기 위해 돈 버는 일에 매몰되어 있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특정 지점에만 머물다 보면 그것에만 집착하는 것이 나에게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예상하지 못해서다.
아주 단순한 예로, "나는 꼭 외모가 뛰어난 사람과만 연애를 하거나 결혼하겠어!"라는 지점에 집착을 하다 보면 조금 외모가 부족해도 지혜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놓칠 수밖에 없어진다.
그리고 누구나 흔히 말하는 '속물'이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은 그 모습을 절대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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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제한된 조건을 획득하는 것만이 삶의 욕구를 해소하는 지점으로 삼아버리면 원하는 성취가 이루어졌을 때 조차도 그것에 대한 만족도가 크게 떨어진다.
원하는 신발이나 옷을 샀을 때를 기억해보라. 너무 만족해서 그 후에 평생 아무것도 사고 싶어 지지 않던가?
아닐걸.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사고 싶어 졌을 거다. 본래 1차원적 욕구의 해소는 더 큰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있다면, 동물은 욕구까지만 가능하고 인간은 욕망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다. 두 단어의 차이는 단 하나, 사회적 관계 성안에서 주어지는 감정적 충족의 유무이다.
당신에게 주어진 가족, 친구, 연인들과의 관계성에서 더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다양한 사랑의 표현으로 누군가의 감정적 결핍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욕망한다면.
그리고 그것들로 인해 발생되는 물질적 욕구들을 부수적인 것들로 간주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삶이 지루해질 필요도 없고 더 힘껏 살아내야 할 이유도 명확해질 것이 자명하다.
욕망의 실현은 충만에 있는 게 아니라 욕망 그 자체의 재생산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채워지지 않을 거대한 우물에 바가지로 물을 퍼서 담는 행위를 멈추자.
1차원적 욕구 수준에 머물며 발버둥 치기보다, 사회적 존재로서 무언가가 되기를 욕망해보자. 주어진 관계를 더 건강하게 만들고 발전적인 대화를 이끌어낼 만한 주제들을 삶의 모토로 삼아보자.
분명 그간 발생된 그 수많은 결핍들이 되려 잘못된 충족으로 재생산된 결핍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당신은 내일 저녁에 맛있는 치킨을 먹는 것보다, 몇백 배는 더 가치 있고 오래도록 기억될만한 일들을 "언제나" 발생시킬 수 있는 존재다. 주어진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