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유명 Oct 13. 2020

공감.

공감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empathy'의 어원은 'Einfhlung'라는 독일어에 기원을 둔 것으로, '타인의 마음, 타인의 감정, 타인의 현재 상태에서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생각을 내가 그 사람의 입장으로 들어가서 느끼고 지각한다'는 뜻이다.

-

지나가는 아이만 봐도 사랑스럽다. 예전에는 별생각이 없다가도 지금은 내게 주어진 생명 때문인지 이입이 다르다. 내가 부모가 될 거라는 사실에 기대와 두려움이 섞여있다. 

그렇다고 내가 훌륭한 부모가 되기에 대단한 자질이나 재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저 남들과 비슷하거나 조금 모자란 정도. 


그럼에도 부모가 되기를 선택한 이유는 조금 더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삶이 그저 고통스럽고 비참하지만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힘들고 고된 시간들이 더 많았다. 다만 내 시간들에 이유가 부여되기 시작한 순간부터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내가 더 알아내야 할 다른 유형의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나와 잘 맞는 사람은 인생에 몇 없는 큰 축복을 만난 것처럼 보였다. 


삶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며 축복을 주고받는 그 담백하고도 넉넉한 느낌을 이해하는 것보다 달콤한 것은 없었다. 그 과정는 공감이 있었다. 감정적 예민함이라는 내 단점은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과 맞닿아 있었다. 


나를 거절한 이들조차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깊은 공감은 내 생각보다 훨씬 크고 넓게 퍼져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누던 예전이었다면, 공감은 잠시의 인연과 영원한 인연, 두부류로 나눠지도록 만들어 가고 있다. 


누군가의 상황을 이해하고 입장을 바꿔보기 위해 그 사람의 감정을 들어가 보려는 그 과정 자체가 아름답다는 것을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늘 아들을 챙겨주시는 부모님의 사랑을 깨달은 것도, 늘 웃으며 저녁식사를 준비해 나를 맞아주는 아내의 고충도 공감 덕분이었다.


나는 내 아이가 함께하는 이들의 어려움을 공감하며 함께 이겨나가는 사람이 될 것을 믿는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크신 사랑과, 거기서 나오는 공감의 능력은 모든 것을 덮고도 남을 만큼 충분하다는 것을 알기에. 

작가의 이전글 얼마 주고 사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