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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 Jan 13. 2022

너는 정말 예쁘구나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예쁘다

황인찬, 유독


아카시아 가득한 저녁의 교정에서 너는 물었지 대체 이게 무슨 냄새냐고

그건 네 무덤 냄새다 누군가 말하자 모두 웃었고 나는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어


다른 애들을 따라 웃으며 냄새가 뭐지? 무덤 냄새란 대체 어떤 냄새일까? 생각을 해봐도 알 수가 없었고

흰 꽃잎은 조명을 받아 어지러웠지 어두움과 어지러움 속에서 우리는 계속 웃었어


너는 정말 예쁘구나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예쁘다 웃는 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였는데 웃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어 냄새라는 건 대체 무엇일까?

그게 무엇이기에 우린 이렇게 웃기만 할까?


꽃잎과 저녁이 뒤섞인, 냄새가 가득한 이곳에서 너는 가장 먼저 냄새를 맡는 사람, 그게 아마

예쁘다는 뜻인가 보다 웃고 있었으니까, 나도 계속 웃었고 그것을 멈추지 않았다


안 그러면 슬픈 일이 일어날 거야, 모두 알고 있었지



유독 _ 황인찬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어떤 날에는 하루 종일 코 끝에서 약품 냄새가 희미하게 감돌기도 한다. 코로나 후유증의 대표적인 증세이다. 이처럼 감각이 둔해지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사물과 현상을 인지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음을 말한다. 우리는 잘 모르고 지내지만, 한겨울 날씨를 인지하는 일에도 후각이라는 감각이 동원된다. 한겨울의 냄새라는 것이 분명히 있는데,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하는 나는 겨울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 때문일까. 나는 요즘 냄새를 자주 상상한다. 주방에서 요리를 할 때에도, 재래시장 한복판을 걸을 때도 내가 이미 알고 있던 냄새를 애써 상상한다.


황인찬 시인의 시 '유독'에는 진한 아카시아 냄새가 배어있다. 저녁의 교정에서 아카시아 꽃잎은 더욱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 어두움과 어지러움 속에서 네가 질문을 던진다. '이게 무슨 냄새지?' 누군가 농담처럼 '이건 너의 무덤 냄새'라고 말하고 모든 사람들이 웃는다. 무덤 냄새란 대체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알 수 없고, 우리는 그저 계속 웃고만 있다... 만약 웃음의 냄새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이 시에 등장하는 웃음은 맵고 한 냄새가 날 것 같다. 애써 떨치려고 해도 사라지지 않는 짙은 여운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마치 어둠 속 아카시아 꽃잎의 냄새처럼. 그런데 왜 나는 너의 웃는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을까?


너의 웃음은 나의 웃음과는 달리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다. 너의 웃음을 보면서 '예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필멸하는 운명의 냄새가 가득한 이곳에서 너의 웃음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시인은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예쁘다'라고 말한다. 이와 함께 슬픔의 자욱한 냄새가 더해지며 이 시는 그야말로 특별한 냄새 그 자체가 된다. 이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 읽는 모든 사람에게 스며들기에 충분한 냄새이다. 나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유독'이라고 하는 시의 제목이 너무나도 적절하다는 생각을 한다. 꽃잎과 어둠이 뒤섞인 곳에서 누군가는 가장 먼저 냄새를 맡는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누군가는 한겨울의 사나운 냄새를 맡으며 가만히 웃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덧.

2019년 가을, 춘천 여행을 갔을 때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이 시의 파편을 발견한 적이 있다. '너는 정말 예쁘구나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예쁘다. 황인찬, 유독' 라고 인쇄된 스티커가 방문객에게 기념품처럼 주어졌던 것이다. 시의 전문을 몰랐다면 그냥 달달한 고백의 언어이겠거니, 생각하고 말았을 것... 그 스티커는 아직도 내 방의 전등 스위치 위에 얌전히 붙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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