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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 Feb 02. 2022

나는 무언가 알게 된 사람처럼 유리문을 연다.

안미옥, 문턱에서


요가학원에 갔다가

숨 쉬는 법을 배웠다.


가슴을 끝까지 열면

발밑까지 숨을 채울 수 있다.

숨을 작게 작게 쉬다 보면

숨이 턱 밑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되면

그러면 그게 죽는 거고


나는 평평한 바닥을 짚고 서 있었다.


몸을 열면

더 좋은 숨을 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몸을 연다는 게 무엇인지 몰랐지만


공중에 떠 있는 새의 호흡이나

물속을 헤엄치는 고래의 호흡을 상상해


숨이 턱 밑으로

겨우겨우 내려가는 사람들이 걸어간다.

숨을 고를 겨를도 없이

두 눈은 붉은 열매 같고


행진을 한다.

다 같이 모여 있다.


숨을 편하게 쉬어봐

좀 더 몸을 열어봐


나는 무언가 알게 된 사람처럼

유리문을 연다.


- 안미옥, 문턱에서




언제부터인가 잠을 아무리 자도 도통 개운하지가 않다. 깨어있는 낮 동안 머릿속이 자주 멍하고 걸핏하면 짜증이 솟구친다. 고민 끝에 수면의 질이 문제가 아닐까 싶어 스스로를 관찰하다가 알게 되었다. 잠자는 동안 호흡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을. 코를 고는 것은 전혀 아닌데 종종 숨이 막히는 기분이 되어 잠에서 깰 때가 있다. 물을 찾아 마시고, 한숨을 일부러 푹푹 내쉬면 조금 나아져서 다시 자리에 눕는다. 요즘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일단 창문부터 열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느끼면서 한동안 깊은 호흡에 집중한다.  


요즘 나는 일주일에 서너번 요가원에 간다. '요가학원에 갔다가 숨 쉬는 법을 배웠다.' 이 시의 첫 문장이 나에게 미친 영향이다.  이전에는 요가를 일종의 스트레칭 운동처럼 생각하고 집에서 유튜브를 보면서 따라 했었다. 요가에서 호흡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호흡에 신경 쓰기보다는 고난도 동작을 따라 하기에만 급급했다. 하지만 이제는 숨 쉬는 법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요가를 한다. 요가에서 말하는 좋은 숨이란 과연 무엇일까. 지도 선생님은 수련 시간마다 수강생들에게 "가슴을 여세요", "몸을 끝까지 열어요"라고 주문한다. '나는 몸을 연다는 게 무엇인지 몰랐지만 공중에 떠 있는 새의 호흡이나 물속을 헤엄치는 고래의 호흡을 상상해'  그리고  '숨이 턱 밑으로 겨우겨우 내려가는 사람들이 걸어간다.' 새와 고래의 호흡에서 엿볼 수 있는 뜨거운 생명력에 비해 사람의 호흡은 어쩐지 슬프고 가엾다. 숨을 작게 작게 쉬다가, 숨이 턱 밑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되면 죽게 되는 것이다. 내 주변에는 큰 숨이 필요한 사람들이 여럿 있다. 자신의 상태를 의식할 여유도 없이 하루하루 바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숨을 고를 겨를도 없이 두 눈은 붉은 열매 같고'...


나는 요가를 수련할 때 나무의 호흡을 상상한다. 레이스 같은 잎새를 가진 여름 나무가 아니라 비바람 속에 서 있는 키 큰 나무의 호흡을 상상하면 집중이 잘 된다. 숨 쉬는 게 뭐가 대단한 일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맞는 말이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호흡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뒤집는다면?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숨이 우리의 몸을 제대로 출입하기 위해 매 순간 싸우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숨이 갈 바를 잃고 주저앉지 않도록 그대여 몸의 문을 여세요. 그렇게 마음의 유리문을 열고 숨을 편하게 쉬어요. 하지만 우리는 문에 속으면 안된다. 본래 숨은 형상을 짓지도 않고 형상에 갇힐 수도 없다. 몸과 마음 또한 마찬가지로 매순간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이지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집 같은 존재가 아니다 . 그러나 우리들은 ‘어쩌자고 벽이 열려 있는데 문에 자꾸 부딪히는지.’(진은영 ‘어쩌자고’) 그렇다 하더라도 큰 숨을 쉬기 위한 노력을, 좀더 살아있 위한 노력 포기하지 않겠다. 오늘 밤에는 사방이 호흡하는 벽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깊고 꿈 없는 잠을 자겠다. 모쪼록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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