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안에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듣다가 눈물을 왈칵 쏟았다. 마스크 윗부분이 젖었다. 한밤이 되어 그만 자려고 이불 속에 들어갔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듣다가 또 눈물을 흘렸다. 새로 씌운 베갯잇이 젖었다. 요즘 너무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좋아해서 그렇다. 낯선 사람들이... 자꾸만 내 안으로 걸어들어온다. 한 명씩 돌아가며 내 가슴 속 의자에 앉았다가, 떠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앉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남들이 좀처럼 거들떠보지 않는 일에 미쳐있는 사람들이다. 시詩에 미쳤거나 신神에 미쳤거나, 다른 어떤 것에 미쳐있거나...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단순하고 집요하다는 것. 나는 그들의 눈빛에서 마찬가지로 단순하고 집요한 메시지를 읽어낸다. "나를 사랑하시오" 때때로 메시지는 이렇게 읽힌다. "나만 사랑하시오" 그럴 때는 내 가슴의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올해도 서울의 봄은 희뿌옇다. 서울의 봄은 너무 바쁘다. 서울의 봄은 멀미를 하고 있다. 아니다. 사랑을 하고 있다. 아니다. 맞다. 아니다... 동네 어린이집 앞을 막 지나가려는데 꽃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매화였다. 가지마다 손톱만한 흰 꽃잎들이 팽그르르 맺혀있었다. 문득 '매화 점괘'라는 제목의 시를 쓰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런 건 이미 누군가-많은 시인들이-썼을 거라고 망연히 생각하면서. 그렇더라도 반복해서 쓰여지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 '살아있다고 느껴집니다.' '지나친 감동에 시달리고 있네요.' '그래도 잘 먹고 잘 잘겁니다.' 이렇게 입 안에서만 맴도는 말이 참 많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매화를 보게 되니 무척 반가웠다. 나는 매화를 사랑한다. 내겐 매화나무에 대한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동해의 산과 바다, 그 중간지대에서 아슬아슬하게 피어났던 매화나무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거의 사람처럼 강렬한 생기를 뿜어내던 매화나무였다. 꽃잎 하나하나가 매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올해도 여전히 아름답게 피었을까? 눈 앞의 매화는 아직 어렸다. 꽃잎도 마저 피어나지 않았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응응, 통화를 하면서 매화도, 매화 점괘도 모두 잊어버렸다. 재래 시장에 들러 딸기를 한 소쿠리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2021.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