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순만 Jun 11. 2024

하늘과 땅이 하는 말

하늘과 땅의 언어들이 허공으로 날린다

하늘도 못다 한 말을 하여 비가 내리고

땅은 못다 한 말을 하여 꽃이 핀다.


맑고 투명한 하늘은

그 하늘을 나는 새가 멀리 볼 수 있게 하고

흙향기가 가득한 땅은

파릇한 풀잎과 곡식으로 우거진 들판이게 하고,

곡선을 그린 언덕 너머에 무수한

동물이 뛰어다니게 한다.


하늘과 땅을 잇는

계곡의 물은

살아있는 것은 모두

온전한 생명 이도록

대지의 혈관으로 흘러넘쳐

온갖 식물의 젖줄이 되게 한다.


물은 보이는 순간 비가 되어 내리고

물은 보이지 않는 순간 언제는 증발하여 하늘로 올라간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호수가 되고 바다가 되지만

자유로운 영혼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장 높은 하늘로 증발처럼 날개를 펴고

구름으로 숨는다.

어쩜 구름 속에 생명의 신이라도 숨어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모든 것은

물을 마시고, 그 몸에 생명의 영혼을 불어는 넣는 것 같다.


죽음이면 온몸에 수분이 모두 빠져나가

생명을 놓는 것처럼.


구름은 안개, 눈, 비, 이슬, 서리, 온갖 이름들로

물을 나른다.

그리하여 먼 시간이 지날 때

계절이 계절이게 하고

시간도

하늘과 땅에

머물게 하고 또 하늘에 날려 보낸다.


나를 날려 보내는 날에는

지상에 머물던 언어도

무지개로 피어난 찬란한 순간이었으면 좋겠다.


너를 날려 보내는 날에는

눈처럼 날리는 너를 향한 언어들이 하얀 축제로

온 세상을 덮고,

눈이 다 녹는 순간

계곡으로 강물로 바다로 흘러갔으면 좋겠다.


투명한 물이

하늘과 땅,

또 다른 세상에 생명일 수 있도록.


그리하여 하늘은

천만년 그러하듯 비가 내리고

땅은 꽃을 피운다.


태초의 생명이 고귀한 그 무엇으로

푸르르게 했듯이

세상이 다 끝나는 날에도

산과 들에는 꽃이 피고

물이 흐른다.


너와 나의 물이 흐른다.

말하지 않아도 말을 하고

말하지 못한 못다 한 언어들이

흐른다.

그리 하여 투명한 침묵은

모든 언어를 담는다.


태초의 언어가

세상 끝에

맞닿아 물처럼 흐른다.


이미지 출처: 한국교육신문

Note 1.

일에 지치는 몸을 이끌고 오면 나는 혼탁한 물처럼 이승과 저승 사이를 흐르는 물처럼 내가 흘러가버릴 것 같다. 동중서의 <춘추번로>나 주돈이의 <태극도설> 같은 책들이 천인감응의 들판에서 찢고진 채 날려가는 것 같다.


글 김순만

2024.06.11.


매거진의 이전글 안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