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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있는 무대 Oct 01. 2021

더 기다릴 수 있습니다.

끌고 가지 않아요. 같이 갈 겁니다.

*상담 후기_동의받은 내용을 담았습니다


인도 속담에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의 발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타인의 살아온 흔적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말라는 것이죠. 설사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비난하거나 조소하기 좋은 모습이라도요. 삶의 경험에 따른 그의 해석이 지금의 방어자세나 공격적인 자세를 만든 것일 테죠. 낭비하거나 혹은 너무 아끼거나 등 분명 그 사람만의 이유가 있을 겁니다.


사랑한다면 견뎌주면 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비켜가면 됩니다. 간단한 원리고 복잡할 게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바꾸려 들지요. 바꾸는 것도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드는데 거기다가 끌고 가려고 해요. 불쌍하거나 화가 나거든요. 그 모습 계속 보기가. 그 사람은 힘들어하는 걸 견딜만해서 그 자리에 계속 있는데, 내가 못 견뎌요. 내가. 하루라도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자유가 찾아오고, 못 깨달으면 평생 시달리거나 괴로워요.


상담 현장이 아닌, 내 일반적인 관계들에서 내가 도울 수 있는 사람은 2명뿐이라고 인지했습니다. 아, 나의 이기적이고 부족한 역량으로는 딱 2명을 어떤 기대와 대가 없이 돕겠구나. 돕고자 하는 범위도 딱 정했습니다. 1년에 4번 밥을 사고, 만날 때 2시간 이상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정도로요. 시간도 돈도 체력도 유한하니깐요. 시간이라도 부자였다면 좋겠지만, 더 사랑하는 사람과 보낼 시간만으로도 부족한 인생이니깐요.


상담현장에서는 '돈'이라는 가치교환 수단을 받았기 때문에, 그만큼은 해내려고 합니다. 가끔, 내담자로 오신 분들은 빨리 바뀌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상담자인 저에게 미안해합니다.

 "계속 이 따위 모습이라서 미안합니다. 폐를 끼치는 듯하네요."

"아뇨, 저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예요. 전혀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리고 상담하기로 마음먹고 이 자리에 나왔다는 것은 변화에 대한 열망이 있어요. 이것만으로 손뼉 쳐드리고 싶어요."

"빨리 변하지 않아서 어떡하죠?"

"빨리 변하고 싶은 이유가 있나요?"

"현재가 괴로우니깐요."

"현재를 버리고 미래로 갈 순 없어요. 억지로 가지 말아요. 현재가 괴로우면 현재의 괴로움과 만나봅시다."

"아."


내담자들과 항상 공유하는 것은,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늘 견지하는 것은 '지금, 이곳에서 살기'다. 현실을 도피하고 무시하고 버리고 가는 미래는 없다. 오직 현재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우린 지금 행복해야 하고, 지금 괴로움에 몸부림 쳐보고, 지금 슬퍼해야 하고, 지금에만 머물러야 한다.


"다음 스텝을 내딛는 것은, 현재의 나예요. 변하지 않는 나도 나예요. 그럼 변하지 않고 버팅기겠다고 용쓰는 '나'로서 소리 질러봐요. 변하기 싫다고!"

"그래도 되나요? 지금 제 모습이 너무 병신 같지만, 인정받지 못했거든요."


 비난하는 내 안의 목소리와 변하라고 말하는 외부의 목소리를 탐색하며 그 소리에 맞대응하며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말합니다.

내담자는 타인의 기대와 요구의 파도에 넘실거리고 빠지고 침수당하다가 처음으로 자신이 띄운 작은 나뭇조각에 올라섭니다. 그리고 손으로 노를 젓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파도 위에 올라타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배를 몰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합니다.


"그거예요. 이제 어디로 가고 싶어요?"

"이젠 휩쓸리지 않을 거예요. 하고 싶은 게 생겼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처절하게 좌절당한 흔적이 있었을 겁니다. 사람은 욕망의 동물인데,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까요. 그 욕망을 좌절시키고 삶을 무력화시켰던 무언가를 찾아내고 분석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요. 그 대상에 대해 분노만 커집니다.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두 발로 딛고 있는 현재에서 욕망하는 자신을 실존으로 지금, 여기로 데려오는 일이 저는 상담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저라는 항구에서 자기 배를 건설해 항해할 내담자들이 때론, 다시 방문해서 고장 나고 깨진 곳을 정박 후 수리한다 해도 그들이 있을 곳은 항구가 아니겠지요. 계속해서 응원하고 힘을 주는 자리에 있어야겠습니다. 제 일을 정말 많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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