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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훈 Aug 09. 2018

불안과 구토

회사생활 5년간의 소회所懷

어느덧 회사에서 일한 지 만으로 5년이 지났다. 참으로 지난한 시간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잠시도 편안하지 못했다. 아마도 나를 움직인 동력의 6할은 관성이었다.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중단하는 본능’에 대해서 말했으나 적어도 나의 경우엔 본능보다 관성(혹은 이성)이 강했다. 중단하지 않고 한 곳에서 5년을 일했다. 자아의 일부분을 형성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이 회사에서 보냈다. 회사에서의 5년은 나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대학 졸업이 다가오자 진로에 대한 고민이 생겼었다. 전공을 살려서 건축가가 되기엔 스스로의 재능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또한 누군가의 사무실에서, 누군가의 건축을 위해 스스로를 소모하는 일은 부질없게 느껴졌다. 일반적인 기업에서 일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동기부여가 어려웠다. 공책에 하고 싶은 일을 쓰고 지우는 일이 잦아졌다. 깊은 심심함을 느꼈다. 발터 벤야민은 깊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라고 부른 바 있다. 이 시기의 나는 부화하지 않을 알을 품고 있었다.


일자리 선택에 있어서 세 가지의 기준을 정했다. ‘창의적일 것’, ‘안정적일 것’, 그리고 ‘가치 있을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위 세 가지 기준을 만족하지 않는 일은 없다. 모든 일은 각각의 창의와 가치가 있으며 안정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나에게 위의 기준을 만족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방송pd를 준비했고, 떨어졌다. 당시에 방송 3사는 파업이 잦았고, 다음 채용을 기다리기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회사의 직무에 대한 별다른 이해 없이 지금의 회사에 지원했고, 합격하여 5년째 일하고 있다.


처음엔 공연 제작의 현장에서 일했다. 예술가와 기획자, 그리고 많은 스태프를 만났다. 하나의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를 직접 보고 느꼈다. 많은 공연을 보면서 공연에 대한 안목이 생겼고, 공연 제작의 전 과정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처음엔 회사생활과 일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궂은일도 많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조율하는 일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밤늦게 퇴근하고 휴일에 출근하는 일이 잦았고, 내 일정을 공연 일정에 맞추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공연이 무대에 올라간 시간이 좋았다. 어두운 백스테이지에 오롯이 남겨지는 기분이 좋았다. 공연이 끝나고 객석에서 울려 퍼지는 박수소리가 좋았다.


입사하고 2년이 지나자마자 다른 부서로 파견이 시작됐다. 왜 나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기관의 경영평가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2년간 맡았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인사부서로 파견되었다. 적어도 이 회사에서 3년을 연속으로 파견근무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축축한 공연 제작의 현장’과 ‘건조한 글을 읽고 쓰는 일’을 옮겨 다녔다. 축축한 곳에서는 글씨가 그리웠고, 건조한 곳에서는 생동감이 그리웠다.


세 번째 파견의 기간은 3개월이었다. 인사업무를 주관하는 부서였다.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당시에 뉴스에선 ‘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보도가 자주 나왔다. 우리 회사도 ‘상시·지속적 업무’ 중 일부를 아웃소싱하고 있었다. 우리 회사도 겪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일‘에 참여하게 될 줄은 몰랐다.

기존 직원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사람들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오랜 기간 함께 일할 가족을 맞이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정부의 지침(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을 읽었다. 아웃소싱 업체에서 어떻게 근무했었는지 임금, 근로조건, 업무유형을 꼼꼼하게 살폈다.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고 아주 많은 사람들의 계약서를 읽었으며, 일주일에 한 번씩 노무사를 만났다. 야근이 많아졌다.

그러나 새로운 직군을 신설하고 새로운 직군의 운영을 위한 제도와 임금을 설계하며 운영방안을 고민하는 일이었다. 평생을 회사에서 일하더라도 경험해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이 일을 하면서 몇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피곤함, 걱정, 두려움, 그리고 어쩌면 내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보람.’ 따위의 감정이었다.


지난 7월 1일에 해당 프로젝트는 완료되었다. 정규직 전환을 위한 모든 준비를 끝내고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대상자 전원이 전환되었다. 기관의 가족이 크게 늘었고 챙겨야 할 일과 재정은 더 많이 늘었다. 그리고 인사관리부로 발령이 났다.


한병철의 책 ‘피로사회’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그래서 이를 테면 박테리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적어도 항생제의 발명과 함께 종언을 고했다. 인플루엔자의 대대적 확산에 대한 공포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 더 이상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면역학적 기술에 힘입어 이미 그 시대를 졸업했다. 21세기의 시작은 병리학적으로 볼 때 박테리아적이지도 바이러스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신경증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신경성 질환들, 이를테면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이 21세기 초의 병리학적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전염성 질병이 아니라 경색성 질병이며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다. 따라서 타자의 부정성을 물리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면역학적 기술로는 결코 다스려지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강한 면역체계를 갖고 있다. 회사는 여전히 강한 면역체계를 갖고 있다. 5년간의 회사생활에서 내가 회사의 면역체계를 배운 것인지, 내가 회사의 면역체계를 만드는데 일조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향후 몇 년간의 목표는 알았다. 나와 회사의 체질개선, 이것이 선결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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