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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Oct 27. 2022

좋아하는 것과 익숙한 것

5년 째 같은 수영장에 다니고 있다. 그 까닭을 좋아해서는 아니고 익숙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면서, 둘 사이의 위계가 느껴지는 이유를 생각한다. 아무래도 정정해야겠지. 익숙하다는 것은 '좋아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고. 익숙함을 얻는데는 수영장이 그곳에 있어주었고, 내가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 수영장에 익숙해지면서 얻은 것은 안정감이다. 생활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든든하다. 다른 것을 신경쓰지 않고 수영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수영장이 없어지거나 문을 닫지 않았기 때무에 가능했다. 코로나가 범람했을 때도 이 수영장은 꾸준히 운영을 지속해주었다. 


1레인에서 6레인으로 오기까지, 수영장에서 수영말고 다른 것을 하거나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스타일과 교대 시간을 알며, 간단하면서도 활기찬 인사를 나누며, 잠시간 예의바른 사람이 되어 샤워실로 통과하는 것이 좋았다. 그분들은 좋은 자리의 락카를 골라 주신다. 셔틀버스를 타는 두세 군데의 장소와 시간이 머릿속에 있고, 같은 시간에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인사를 듣는다. 나에게 맞는 샤워장 자리를 바로 찾아갈 수 있다. 그 시간에 마주하는 사람들이 모두 익숙하다. 몇 사람에게는 여유있게 짧은 안부를 물을 수도 있다. 수영장에 오래다닌 사람이 되어, 어떤 군더더기 없이, 마음과 행동의 번잡스러움 없이 수영만 하다 올 수 있었다. 


구나 시단위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을 신규로 접수하는 일은 무척 어려워서 새벽같이 줄을 서야한다는 건 과장이 아니다. 이에 비해 기존 등록자의 접수는 얼마나 쉬운지.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등록에 등록을 이어왔던 것이다. 그동안 거쳐간 수영 선생님은 조금 과장을 해서 20명쯤 되는 것 같다. 어떤 선생님도 6개월 이상 머물지 않았는데 이것은 코로나 이후로 극심해졌다. 선생님마다 교수법이 다르기 때문에 지루해지는 일이 없었으나 이 사태를 제대로 말하자면, 수영장의 고용형태가 불량하다는 뜻일테다. 처음에는 몇몇 분이 마지막을 얘기할 때면 크게 놀랐지만, 그 이후에는 더 좋은 곳으로 가시는구나 응원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27년 째 수영을 하고 계시다는 분을 홀로 롤모델로 삼으며, 인터넷 쇼핑이 어려우신 분께 패들을 사드리기도 하는 신뢰를 보일 수도 있었다. 몇몇 분과는 길게 이야기를 하게 되어, 어느새 직업이나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제 또, 배영 10바퀴를 돌며 생각했다(나는 배영을 싫어한다) 수영장을 옮겨야겠어. 이번에 바뀐 선생님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시기 때문에 처음부터 스타트와 턴을 배우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상급반에게 스타트와 턴이 없다면 그건 좀 심심한 일이다. 하지만 어제도 턴을 하다가 극심하게 다쳤던 사례를 말씀해 주셨다. 그렇지만 배영만 하는 건 좀 너무했다. 오로지 배영과 접영만 하며, 평영은 거의 하지 않는다(나는 평영을 제일 좋아한다). 새로운 곳에 가서 다른 수영을 해야겠어. 익숙한 곳을 떠나 새 수영장으로 간다는 것은 얼마간 허둥거려야 한다는 뜻이다. 새벽의 줄서기, 셔틀 버스를 기억하기, 저녁 먹기와 이동 시간부터 다시 해야하는 일이다. 몸으로 익혀온 이 수영장의 모든 시설, 샤워실의 좋은 위치 선정, 락카룸, 씻고 말리기의 최적화를 떠나 모든 것들에 다시 적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수영장을 옮긴다는 게 수영을 떠난다는 뜻은 아니니까 그렇게 아쉬운 일은 아닐테지만 안부를 나누던 몇 사람에게는 인사를 해야한다는 뜻도 있다. 서로의 얼굴을 알게 되었으므로 할 수 있는 것. 이렇게 긴 시간을 주어야만 나눌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일이겠지. 27년 째 수영을 하고 계신 수영장 선배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기억하며. 언젠가 함께 머리를 수그려 국수를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일흔이 가까우신 선배도 생각한다. 그들의 수영을 오래오래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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