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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Aug 07. 2019

물 속에서 키를 재는 방법

팔을 올려 귀 옆에 붙여보세요, 그게 당신의 키랍니다

어는 날, 키가 몹시 자란 것 같았다. 생각에는 2미터에 가깝다고도 느꼈다. 그런데 그건 나조차도 의심하는 숫자니까 좀 줄여서 180센티쯤은 기꺼이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 그게 무슨 소리냐.라고 한다면, 물속의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다.


수영하는 팔을 보자. 팔이 노처럼 물을 잡는데, 그 시작은 팔이 귀에 닿은 일직선상이어야 한다. 말이 나온 김에 노가 물을 젓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물을 잡는다고 해야 한다. 젓는 것은 섞는 일에 더 가깝다. 이쯤에서 물을 어떻게 잡을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맞다. 바로 그런 사람들의 언어이다. 노 젓는 배를 멀리서 지켜본 사람들. 노 젓는 배의 풍경을 스크린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수영을 해본 적 없는 사람들. 물이 가득한 공간에 들어가 본 적 없는 사람들.  


하여간, 최대한 먼 곳의 물을 잡아와 멀리 나갈 수 있어 가능한 더 쭉 뻗어야 한다. 물을 잡아 다리 쪽으로 보내도 기본자세는 다시 팔이 귀에 닿는 일직선이다. 그러므로 내 몸의 시작은 정수리가 될 수 없다. 얼굴은 서 있을 때의 가슴 정도의 위치라고 할까. 아무도 가슴부터 키를 재지 않는다.


게다가 발목은 늘 일자로 펴져있다. 정강이와 발등을 거의 하나의 선으로 이용해 물을 때리기 때문. 그러므로 서 있을 때 내 몸의 끝이었던 발바닥은 허벅지처럼 내 몸을 지나는 일부일 뿐이다. 물속에서 키를 잰다면 그 끝은 발가락이 되는 셈. 그야말로 손끝에서 발끝까지가 새로 얻게 된 내 키다. 몸을 다르게 사용하니까, 길이를 다르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키를 2미터쯤으로 인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머리 위로 손을 뻗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 손까지 키가 된다. 자세를 교정할수록 키가 가능성이 있다. '상완'을 이용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주문받는다. 나는 상황을 이용하라는 줄 알았지. 어깨가 가장 많이 바뀌었다. 펴지 않는 자세가 불편해졌다. 어깨와 팔, 그리고 어깨에서 등으로 넘어가는 부분에 근육이 지기 시작했다. 물이 만드는 몸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짐작했을까. 물이 만드는 마음을.


레인에 먼저 도착한 사람들의 어깨가 물에 번들번들 빛다. 물결을 그대로 올려놓은 몸들. 발등을 이용해 뛰던 사람들이 물 밖으로 나와 발바닥으로 걷는걸 본다. 옷으로 어깨의 근육을 숨긴다. 을 때 머리 위로 팔을 뻗는  상식적인 자세가 아니지. 그리고 나는 키가 180 정도 되는 사람처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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