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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Jul 22. 2019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네

터닝포인트는 언제인가요,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나요

한 시간 동안 우리는 1000미터를 수영하기도 하고, 1400미터를 수영하기도 한다. 그런데 레인은 25m뿐이니까 1천 미터를 돌려면 이 짧은 레인을 십수 바퀴 돌아야 한다. 레인은 직선이고, 직선이라는 말에 양 끝을 포함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수영장이 그렇게 생겨서, 우리는 양 끝의 벽을 몇 번이나 차고 나와야 한다. 마치 실을 감는 것처럼.


턴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영법에 따라서 가능한 턴의 종류가 있는데 그 가짓수를 아직도 다 알지 못한다. 그걸 하나하나 수집하는 재미가 있을 텐데 이따금 수영 강사님이 턴을 좀 해야 할까, 생각이 들 때 배우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내친김에  배형 턴도 배운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잊어버려 턴은 좀처럼 늘지 않는다.

 


턴을 배우기 전에 뭘 배우냐면, 물 속에서 앞구르기를 연습한다. 앞구르기 쉽지 않다. 물 밖에서의 앞구르기와 다르게 무게 이동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숨쉬기도 중요한데, 코로 숨을 가늘게 필요한 만큼 내쉬지 못하면 숨이 가득한 폐가 몸을 두둥실 띄우기 때문이다. 두 손은 물을 누르거나 위로 올려 보내야한다. 이런 것들이 함께 앞구르기를 만든다. 물 밖에서라면, 고개를 숙이고 몸을 말아 넣는 것만으로도 일어날 일인데도 말이지.


그렇게 앞구르기를 성공해 플립턴을 해보니, 턴의 묘미는, 내가 '장소'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 여기서 도세요, 라는 것은 없다. 벽은 일찌감치 보이기 시작했다. 물을 몰아쳐 달려오는 내 속도와, 내 몸의 길이, 돌기로 마음먹는 순간들이 합세해 턴 해야 할 지점을 선택한다.


이쯤 되면, 턴 하는 장소가 턴을 도는 사람의 수와 같다는 것이 또 재미있다. 우리 몸은 누구와도 달라서 턴 하는 위치도 다 다르다. 같은 키라고 하더라도 팔 길이나 다리의 길이가 다르다면 벽과 마주하는 거리도 다르고, 따라서 턴 하는 장소도 달라지며 마침내, 돌게되는 시간도 달라진다.

나는 몇 번의 스트로크로 저 지점에 도착하는가. 벽에 너무 가깝게 도착한다면 나는 부딪히고 제대로 돌지 못할 것이고, 벽이 너무 먼 상태에서 돌기 시작하면, 벽을 차고 나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무력하게 보내버릴 수도 있다. 물을 차는 것과 벽을 차는 것은 이렇게 다르니까. 나 스스로, 내 몸이 가보지 않으면 누구도 알려주기 어렵다. 수영장에 단단한 벽이 없다면 수영은 너무나 더 힘들 것이다.


턴해서 나오는 시간이 수영을 느리게도 만들지만, 벽을 차고 나오는 힘은 다시 헤엄칠 힘을 주기도 하는 아이러니. 이렇게 물렁물렁한 물은 내 다리에 어떤 힘도 실어주지 않는다.


당신이 만약 그 직장에서 그만 나오고 싶다면, 직무를 바꿔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면, 나름의 끝을 확인해 보라고 하고 싶다.


월수금 8시 직장인 수영이 알려준 건데 끝을 확인하는 일은 나만 할 수 있고, 그게 단단한 지 아직 물컹물컹한 지 나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자 할 때, 전혀 다른 방향으로 뛰어들려고 할 때, 내가 지금껏 왔던 길이 돌아나가려는 나를 단단하게 버텨낼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내가 저 아래로 쏟아져도 무너지지 않을 믿을만한 구석이 있어야 한다. 아직 그걸 확인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그걸 더 단단하게 할 시간이 남았는지도 모른다.

1년 정도 수영강습을 하게 되니까 자연히-라고 하면 수영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약 오르는 말이 될 테지만- 벽에 발바닥을 붙이고 물속에서 기다리는 방법을 알게 된다. 그래 봐야 몇 초에 지나지 않지만, 아주 오래는 아니지만 벽에 발을 붙이지 않았다고 할 수 없는 시간. 물에서 그 정도의 여유를 받으면 되돌아나갈 때 한 숨을 고를 수도 있다.


숨조차 제대로 쉬는것을 받아주지 않았던 바로 그 물 준 것이다.


끝 보이지 않는 유영이 지친다면, 저 앞의 무엇이 가로막혀 나를 더 이상 못 나가게 한다면, 그 앞에서 돌아 나오면 된다. 반대쪽으로 가는 기분이 어떻겠냐고? 방향이 정확히 반대라면, 그건 내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시간 여행 밖에는 없다.


아주 반대로 갈 일은 평생에 없으며, 그것으로 경험이 덜해지거나 더 미숙해 질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우리는 내가 걸어온 길과 조금씩 겹치면서 끝내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 선을 그는데, 내가 어느 자리에서 배우고 익혔던 것들은 기필코 방울방울 남는다.


수영장에 가기 전, 어깨를 붕붕 돌린다. 멋지게 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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