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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Jul 14. 2019

손 끝으로 터널 만들기

다른 세계에 가기 위한 최선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것이 첫째.

물에 제법 익숙해지면, 접영까지 어느 정도 하게 되면, 산 같은 레인을 넘어 중급반 이상에서 몸을 풀게 되면. 수영 선생님들은 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밖으로 불러낸다. 우리는 머리부터 물을 뚝뚝 흘리며 나온다. 어리둥절하게 서서 발바닥으로 타일 틈이 잘 느껴지는 공기에 선다. 물속으로 들어가는 스타트, 수영의 시작을 비로소 배우려는 참이다.


스타트라니, 근사한 말 같지만 어쨌든 물에 빠지는 일이다. 그것도 (거의) 머리부터 빠지는 거라서 자연스러운 과정은 아니다. 물에 빠지는 기본자세, 스트림라인은 두 팔 아래 머리를 놓고 두 손을 포개는데, 이때 머리가 어깨 바깥으로 나오면 안 된다. 물의 저항을 가장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어깨로 평평하게 몸을 다듬었으니까. 


가장 나중에까지 나를 봐 둬야 할 눈은 이제 물속만을 바라본다. 따라 들어오는 몸은 머리가 하는 일을 그저 따라서 가는 수밖에 없어서 무섭다. 처음부터 매끈하게 빠지는 사람은 많지 않아, 스타트는 바닥에 앉아서 시작한다. 그다음에는 발가락을 걸고, 그다음에야 말로 스타트 단에 올라가 자세를 잡는다. 처음부터 멋있게 힘껏 빠지지 않는다. 물에 얼굴을 마주하고 앞으로 고꾸라지는 일부터 배운다. 바로 앞으로 빠지는 일을 잘했다면, 조금 더 앞으로 넘어가기, 그다음에야 발 끝에 힘을 걸고 뛰어오르는 식.

제는 빠르게 떨어지는 일이 관건이다. 포물선을 그리는 공이 된 것처럼 움직여야 한다. 물에 풍덩하고 빠지는 것이 아니고 손 날로 물 표면에 작은 터널을 만들 그 터널로 몸을 넣는다. 이때 몸은 내가 만든 터널만을 통과해야 한다. 언젠가의 만화에서 보았던 차원의 문, 감쪽같이 닫히는 일렁이는 문을 통과하듯이. 망설이다가는 닫혀버리고 친구들을 잃어버리게 되는 먹먹한 터널. 하지만 주인공들은 언제나 쏙 들어갔었다.


공기가 아닌 물의 세계로 건너가기 위해서 이 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내가 뛰어들면서 만들 이 '원'에 말이다.


이제 허리를 숙여서 머리무릎비슷한 위치에 가고, 허리는 산처럼 높아진다. 그런 몸이 되어 시작을 기다린다. 이때 몸에서 가장 무서움을 가장 많이 느끼는 건 아까부터 발가락이다. 조금은 우습고 짠하지만, 눈도 없으면서 오들오들 떠는 어깨를 알고 있다. 수영의 스타트 외에도, 엄지발가락으로부터 시작하는 일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손날이 물에 길을 낸다. 발꿈치까지 그곳으로 사라진다. 숨 쉬는 방법을 바꾸기까지 불과 몇 초. 이 몇 초를 알게 되기까지 걸린 일 년 반. 


당신이 스타트를 해야 한다면, 머리를 숙일수록, 당신의 눈이 아니라 발가락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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