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밤 Jun 30. 2019

가슴으로 물을 눌러보세요

그전까지 가슴은 말해지지 않는 장소, 그저 위치를 이르는 말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무얼 잡고 일어나면서부터? 너무 오래전에 배워서 어떻게 걷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공기를 바닥으로 누르듯이 걷는 거야, 배로 중심을 잡는 걸 잊지 말고, 이렇게 알려주었을 리 없기 때문에 별 다른 깨달음도 없이 그저 두 다리를 움직여 걷고 있다.


수영을 배우는 건 물 안에서 걷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 숨쉬기부터 배우니까 더 하지 싶다. 태어나면서부터 하지 않을 수 없던 일이었으니까. 새로운 걸음마를 배우는 중에 뭍에서의 일을 생각한다. 걷는 게 자연한 땅 위에서 내가  결코 알 수 없었던 이 자연스러운 고단함과 외로움. 매번 느껴서 어떤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것'인지 되묻게 되는 물 속이다.


물을 누르는 힘이 아직 약하네요

온몸이 마땅히 근육이어야 한다는 듯 탄탄한 수영 선생님은 자신의 가슴을 가르이렇게 주문했다. 크고 작은 근육 쭉 뻗  갈라진다. 뒤따라온 가슴이 물을 누르고, 당장이라도 저 앞으로 나아가버릴 것 같다.


이렇게 가슴으로 물을 더 눌러보세요


물결이 직선으로 나간다면 사람은 물속에서 뻣뻣하게 헤엄치는 방법을 터득했을 테다. 그러나 물에는 파동이 있고 그것은 늘 둥글게 움직인다. 그 둥글고 둥근 게 부딪혀서 힘을 만들고. 물을 눌러준다는 건, 물보다 조금 더 힘이센 곡선이 되자는 이야기.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아직, 알리가 없지.




접영으로 어푸어푸 나가면서 생각했다. 물을 누르라니, 그것도 가슴으로! 시의 한구절 같다고 생각했다. 어푸어푸. 돌아오는 물에서 본 그의 팔은 연한 갈색으로 윤기 있게 빛났다. 내가 가슴으로 물을 얼마나 눌렀는지 벌써 아는 눈치다.


갑자기 가슴이 뭘 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 가슴은 그저 위치를 이르는 말이었으나, 그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도 말해져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말해지지 않는 장소. 가슴의 미덕은 조용한 것이었으므로 잘 따랐다.


여자의 가슴이란, 도무지 힘 같은 걸 쓰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거기 있음이 잘 보이되 잘 보이지 않아야 하는 곳이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이 운동에는 가슴이 필요하다. 물을 눌러야 더 빠르게 나갈 수 있어. 오늘부터 싸움에 참여하는 가슴은 가능한 물을 힘껏 눌러본다.   


수영을 배운다는 건 물을 이해하는 몸이 되는 것.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임에도 어떻게 끌고 올 수 있는지, 물속에서 몸을 가능한 길게, 또는 순식간에 탄력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 물을 거스르지 않고 물에 잘 보이며, 물의 갈래로 들어가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렇게 물을 누르면서 속도를 만들어 내는 방법도.


가슴으로 물을 누르면 배는 자연히 그 보다 조금 더 위에, 엉덩이는 그보다 조금 더 위에, 그리고 허벅지는 다시 엉덩이보다 아래로 향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몸은 부드럽게 구부러져, 완만한 곡선이 되어 물 사이로 들어간다. 나는 이제 원하는 만큼 물속 깊이 들어갈 수 있고, 물은 언제나 그걸 잘 받아준다.



나는 수영하는 내 몸을 보지 못하지만,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잘 느껴진다. 이를테면, 가슴이 힘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 같은 것을.








매거진의 이전글 보노보노의 배영은 유유자적이 아니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