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무얼 잡고 일어나면서부터? 너무 오래전에 배워서 어떻게 걷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공기를 바닥으로 누르듯이 걷는 거야, 배로 중심을 잡는 걸 잊지 말고, 이렇게 알려주었을 리 없기 때문에 별 다른 깨달음도 없이 그저 두 다리를 움직여 걷고 있다.
수영을 배우는 건 물 안에서 걷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 숨쉬기부터 배우니까 더 하지 싶다. 태어나면서부터 하지 않을 수 없던 일이었으니까. 새로운 걸음마를 배우는 중에 뭍에서의 일을 생각한다. 걷는 게 자연한 땅 위에서 내가 결코 알 수 없었던 이 자연스러운 고단함과 외로움. 매번 느껴서 어떤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것'인지 되묻게 되는 물 속이다.
물을 누르는 힘이 아직 약하네요
온몸이 마땅히 근육이어야 한다는 듯 탄탄한 몸의 수영 선생님은 자신의 가슴을 가르키며 이렇게 주문했다. 크고 작은 근육의팔을 쭉 뻗자물이 갈라진다. 뒤따라온 가슴이물을 누르고,당장이라도 저 앞으로 나아가버릴 것 같다.
이렇게 가슴으로 물을 더 눌러보세요
물결이 직선으로 나간다면 사람은물속에서 뻣뻣하게 헤엄치는 방법을 터득했을 테다.그러나 물에는 파동이 있고 그것은 늘 둥글게 움직인다. 그 둥글고 둥근 게 부딪혀서 힘을 만들고. 물을 눌러준다는 건, 물보다 조금 더 힘이센 곡선이 되자는 이야기.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아직, 알리가 없지.
접영으로 어푸어푸 나가면서 생각했다.물을 누르라니, 그것도 가슴으로! 시의 한구절 같다고 생각했다. 어푸어푸. 돌아오는 물에서 본 그의 팔은 연한 갈색으로 윤기 있게 빛났다. 내가 가슴으로 물을 얼마나 눌렀는지 벌써 다 아는 눈치다.
갑자기 가슴이 뭘 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 가슴은 그저 위치를 이르는 말이었으나, 그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도 말해져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말해지지 않는 장소. 가슴의 미덕은 조용한 것이었으므로 잘 따랐다.
여자의 가슴이란, 도무지 힘 같은 걸 쓰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거기 있음이 잘 보이되 잘 보이지 않아야 하는 곳이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이 운동에는 가슴이 필요하다. 물을 눌러야 더 빠르게 나갈 수 있어. 오늘부터 싸움에 참여하는 가슴은 가능한 물을 힘껏 눌러본다.
수영을 배운다는 건 물을 이해하는 몸이 되는 것.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임에도 어떻게 끌고 올 수 있는지,물속에서 몸을 가능한 길게, 또는 순식간에 탄력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 물을 거스르지 않고 물에게 잘 보이며, 물의 갈래로 들어가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렇게 물을 누르면서 속도를 만들어 내는 방법도.
가슴으로 물을 누르면 배는 자연히 그 보다 조금 더 위에, 엉덩이는 그보다 조금 더 위에, 그리고 허벅지는 다시 엉덩이보다 아래로 향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몸은 부드럽게 구부러져, 완만한 곡선이 되어 물 사이로 들어간다. 나는 이제 원하는 만큼 물속 깊이 들어갈 수 있고, 물은 언제나 그걸 잘 받아준다.
나는 수영하는 내 몸을 보지 못하지만,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잘 느껴진다. 이를테면, 가슴이 힘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 같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