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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Jun 16. 2019

보노보노의 배영은  유유자적이 아니야

기도를 누워서 해본 사람은 안다.

열은 목 위로만 올랐다. 몇 년간의 병원에 지쳐있었다. 몸에 진물이 흘렀고 아픈 건 또 밤에 심해졌다. 잠을 자지 못했다. 신음으로 버티다가 어느 날은 앞구르기를 했다. 그냥. 열이 움직이라고. 그냥. 앞구르기를 하면서 하하 웃음이 났다. 나 진짜 아프구나. 나로 인해 아프니까, 나로 인해 괜찮아지고 싶었을 뿐인데 모습이 우스웠다. 밤에 다 큰 어른이 방 안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앞구르기를 했다.



나로 인해 아프니까, 나로 인해 괜찮아지고 싶었을 뿐인데
모습이 우스웠다. 밤에 다 큰 어른이 방 안에서
 앞구르기를 했다.


두 손만 모으지 않았을 뿐 그것은 기도였다. 인과 없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나를 떠난 간절. 그러나 이것은 무릎을 꿇고서 하는 기도가 아니었다. 기도를 누워서 해본 사람은 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바닥에서 일어날 수 없어 등을 붙이고, 천장을 바라보는 일. 기도의 자세를 알 수 없고, 자신이 이미 기도가 되어버린 사람들. 배영을 하면서 이 날의 열에 앞구르기를 하던 날이 생각났다.



기도의 자세를 알 수 없고
 자신이 이미 기도가 되어버린 사람들.



배영을 처음 배운 날, 크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 속아왔고 속은 줄도 모르고 지내왔으며 그걸 오늘에서야 깨달았음을 알았다. 유년의 어느 때 등장했다가 최근에 다시 모습을 크게 드러낸 보노보노에게 말이다. 나는 배영을 보노보노의 수영 같은 거라고 생각해왔다. 숨쉬기처럼 물에 누워 있으면 되는 그런 것. 그러나 배영을 막 배우기 시작한 사람에게, 진실은 침수 직전의 배가 되어 허둥거리며 건너야 하는, 누워서 하는 기도와 닮은 모양이었다.



진실은 침수 직전의 배가 되어
허둥거리며 건너야 하는,
누워서 하는 기도와 닮은 모양이었다.



그걸 건넜다고 해야 할까. 쓸려 갔다고 해야 할까.

수영은 인간의 많은 부분을 무력하게 만든다. 동시에 물고기를 우러러보게 만드는데, 배영에서는 마침내 9할이라는 눈까지 별 쓸모없게 만들었다. 누워서 볼 수 있는 건 천장. 천장을 봐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곁눈질로 보이는 옆 레인은 그나마 도움이 되지만 별 쓸모는 없다. 최악은, 내 발끝과 머리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내 앞 뒤로 누가 가고 있는지, 누가 오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걸 아는 단 한 가지 방법은 몸이 부딪히는 것이다.


내 앞 뒤로 누가 가고 있는지,
누가 오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걸 아는 단 한 가지 방법은 몸이 부딪히는 것이다.



몸이 먼저 감각하고 나서야 거기 무엇이 있음을 비로소 알았다. 보통 눈이 하던 일, 이제는 온몸이 눈이 되어서, 만나기 전에 알던 일은 사라지고 언제 무엇이든 닿는 일을 대비하고 있어야 했다. 온 신경은 곤두세우고 긴장하는 몸으로 물길을 만들고. 눈은 꿈뻑꿈뻑 천장을 맹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게 1년이 되었는데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늘도 등을 물에 대고 물을 제대로 잡아보려고, 천장을 보고도 내가 어디쯤 왔는지 가늠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


참, 그날의 앞구르기로 몸이 나아졌냐고? 한 참 뒤에 몸은 괜찮아졌다. 아무 도움 안되었을 텐데, 적어도 태도가 어떤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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