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밤 Jun 03. 2019

내일은 또 새롭게 질 일들이 남아 있다

지는 일에도 완성이 필요해요

명백히 둘이서 달리는,
이기고 지는 게 다 보이는,
이런 경주는 초등학교 이후로 해본 적이 없다.
고조되는 달리기.


"자유형 대시할게요."


명백히 둘이서 달리는, 이기고 지는 게 다 보이는, 이런 경주는 초등학교 이후로 해본 적이 없다. 고조되는 달리기. 그것은 계주로 드문드문 명맥을 이어 20대 중반에 다 끝났다. 수영장에서 자유형으로 다시 만나게 되다니.


 수영강습보통 잘하는 순서대로 출발하기 때문에 1,2번째 사람이 대시를 하면 3,4번째의 사람이 대시를 하는 식이다. 그렇게 나름 비슷한 상대를 만나도 늘 지는 편인데, 하루에 대시를 대여섯 번 정도 하니까, 대여섯 번 진다.




평소보다 약간 더 차가운 물.
오늘따라 선명한 락스 냄새.
눈은 저 멀리 도착할 곳을 미리 봐 둔다.




취미로 수영을 하는 사람들에게 시합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평소보다 약간 더 차가운 물. 오늘따라 선명한 락스 냄새. 눈은 저 멀리 도착할 곳을 미리 봐 둔다. 누가 잘하는지, 내가 어디쯤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은 늘 같은 레인을 돌뿐인 수영을 조금 다르게 만들어 준다. 전력을 다해 몸을 쓰는 시간. 긴장하며 손을 터는 강습생들과 달리, 강사 선생님은 좀 신나는 표정이다.


다음 내 차례.




만약, 상대를 이기고 있다면
시야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다.
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만약, 상대를 이기고 있다면 시야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다. 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보다 조금 앞서는 팔꿈치, 좌우로 롤링하는 몸, 더 크게 지면 물거품과 다리가 보인다. 이 정도 되면 뒤집기 쉽지 않다. 언젠가는 발 끝이 보인 적도 있다! 25m는 굉장히 짧은 거리이지만 수영이라면 그 안에 지치는 일도 가능하다. 그렇게 중반 이상을 지다가 마지막에 닿을 때쯤 상대방의 몸통쯤으로 회복하기도 한다. 오늘은 약간만 지는 걸로. 조금은 따라잡았다는 심정으로 '졌다'.





이기는 일에만 '완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루에 여섯 번씩 지그 일에도 끝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두 가지 일 모두 상대가 아니라 무엇보다 나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는 것도. 지는 일을 끝까지 가는 일. 지는 일도 끝까지 해야 제대로 질 수 있다. 1등이 명백해도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직 내 시합이 끝나지 않았는 걸.



지는 시합이라도 내가 끝까지 가지 않으면
지는 일조차 제대로 끝나지 않아,
지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



이 판은 떻게 해도 이길 수 없다. 조금 더 힘을 내는 것으로는 뒤집어지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지는 시합이라도 내가 끝까지 가지 않으면, 지는 일조차 제대로 끝나지 않아, 마침내 지지도 못하는 사람이 된다.



생각에 수영은 이런걸 알려준다.


마음 놓고 물에 들어가 원하는 만큼 떠 있다가 나올 수 있다는 것. 이 연습을 하면 오늘의 수영이 끝나는 것이나





대여섯 번 지고 나와 수영복 물기를 꽉 짜서 가방에 넣으면

내일 또 새롭게 질 일들이 남아 있다는 것.







매거진의 이전글 이름은 모르는 편이 좋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