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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May 28. 2019

이름은 모르는 편이 좋습니다

인사에 이름은 필요없어요. 대신 손을 잡아봅니다.



둥글게 둥글게
 물속의 원이 되어
인사를 하는 어른들





 수영강습에는 모두 모여 손을 잡고 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다. 오늘의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물을 걸어와 약속처럼 원의 한 점이 된다. 날에 따라 우리는 작은 원이 되기도 하고 큰 원을 만들 때도 있다. 둥글기 때문에 내 자리라는 것은 없고, 그걸 알지 못해도 괜찮다. 나로 인해가 아니라 내 옆의 사람들로 인해 이 원은 어떻게든 만들어지니까. 이것은 수업 끝을 알리는 언젠가의 종처럼 오늘의 강습이 끝났음을 알리는 모종의 인사이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물을 걸어와
 약속처럼 원의 한 점이 된다


 한 시간쯤 연습을 하면 기진맥진해 끝을 기다리게 된다. 그 기다림과 늘 기쁘게 만나는 원. 수영하는 사람들은 그제야 비로소 모두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손을 잡고 들어 올리는 인사는 구태연하면서도 즐겁다. 일곱이나 여덟 살쯤을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잊었던 일 아닌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손을 맡기며 조금씩 다른 세기로 손을 잡고 잡히고 들어 올린다. 인사는 다만 어른의 목소리. '고생하셨습니다!'


모두에게 하는 인사여서 누구에게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한 번의 인사.


그걸 끝으로 다시 물속으로 걸어 나가면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유유히 자기 키만큼의 물자국을 내며 반대편 레인까지 가면, 물속을 나와 샤워장으로 가는 좁고 꺾인 타일의 방을 지나 우리는 전혀 몰라도 되는 사람이 된다. 의식 같은 안녕. 자유로워지는 안녕. 수영강습에서 이 처음의 인사로 '우리'에서 '나'로 풀려나오는 법을 배운다.  


이 처음의 인사로 '우리'에서 '나'로
풀려나오는 법을 배운다.  



인사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물속에서 나와야 할까. 우리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다. 수영을 할 때에 우리는 모두 같은 둥근 머리, 밖에서 마주쳐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야말로 익명의 세계. 그러나 한 시간쯤 대열을 이뤄 레인을 돌면 알게 된다. 여느 작은 물고기 떼처럼 그 무리가 있어 나의 속도를 알게 되고, 내 속도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어 배울 수 있었다고. 여기에는 내가 운동을 한다는 작은 사실 말고도 많은 배려와 예의가 있었다는 걸. (물론 늘 반대편의 것들도 포함하지만)


입이 단지 숨을 쉬는 기관으로서 전락해버리는 수영에서 생각은 오직 내 머리에서만 오간다. 그걸 생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 25m라는 작은 거리, 내가 충분히 파고들 수 있는 130cm의 깊이, 물의 경계에서 숨 쉬는 일부터 다시 배웠던 수영에서 왜 이름을 모르는 사이에서도 인사가 필요한가를 생각한다.


수영을 끝낸 우리에게 물은 입을 돌려준다. 물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될 참이니, 수영으로 잠시 입을 잃었던 사람들에게 서로의 안녕을 고하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그걸 잘 알아듣는 사람들. 작고도 단순한 말의 시작. 이 다리로 바깥을 나가면 우리는 곧 말을 하고 거리를 걷고 숨을 쉬는지도 모르게 쉬어 버릴 것이다. 가끔의 한 시간, 물속에서의 일은 잊기 쉬울 테지. 그러기 전에 인사를 한 번 하는 것이 좋겠구나.

수영을 끝낸 우리에게 물은 사람의 입을 돌려준다.

 수영으로 잠시 입을 잃었던 사람들에게
서로의 안녕을 고하는 일부터 말을 시키고


그렇게 숨만 겨우 쉴 수 있었던 수영에서의 입이, 말하는 입으로 바뀌는 순간. 한 번에 모두에게 할 수 있는 안녕도 연습하는 것이다.


수영은 그런 걸 알려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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