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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재 Mar 09. 2022

아기, 너의 이름은

태명은 이마땅.

2022년 1월 9일, 처음으로 아기의 존재를 확인한 뒤 꼬박 2개월간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외고 약간씩을 제외하면 어쩜 그렇게 일도 들어오지 않는 차가운 겨울이었나 모르겠다.


침대에 누워 겨울을 미워하며 한편으론 다가오는 봄을 두려워했다. 활동을 시작하는, 생기가 넘치는, 사회의 일꾼들이 바깥세상을 활개 치고 다니는,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봄이 오면 나만 점점 커져가는 배를 싸안고 방안에 누워있게 될 것 같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뜬금없이 대성통곡을 했고, 나는 왜 출산휴가나 육아휴직도 써보지 못하는 반백수 프리랜서인가, 1년 전의 퇴사를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리곤 눈물바람이 무색할 정도로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자도, 자도, 계속 졸릴 수 있다니 아기가 자라는 데는 정말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쓰인다.


아기가 함께 있다는 것에 익숙해지기도 전 불쾌하고 미묘한 메슥거림이 시작됐다. 소주 2병, 맥주 2병, 와인 1병을 퍼마신 다음날 같은 숙취였는데, 이게 영 가시질 않았다. 물도 이상한 맛이 나고, 치약도 역겹고, 치킨을 먹고는 화장실로 달려가 토해버리고 말았다. 입덧의 급습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숙취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아팠던 경험도 어느 날의 숙취일 정도로 숙취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도 입덧은 좀 힘들었다. 숙취는 알다시피 늦어도 오후 4시가 넘어가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하는데 입덧은 끝이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은 멀고도 험하며 괴로운 법. 그렇게 2주를 버티고나서 입덧 약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임산부가 먹어도 되는 등급의 약이고 효과가 괜찮아 밥을 조금씩이라도 먹을 수 있었다. 고맙고 대단한 현대 의학이다. (여유가 된다면 1년쯤 후에 숙취에도 효과가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다)


입덧이 좀 괜찮아지자 왈칵 서러움이 밀려왔다. 신나게 연애하느라 인생 최대의 몸무게를 찍어버렸는데, 다이어트도 못하는 상황에서 수많은 지인을 앞에 두고 (외모와 어울리지 않을) 세상 화려한 드레스를 걸친 채 결혼식에 나서야 한다. 청초한 새신부 포기. 내가 어떻게 역세권 복층 오피스텔로 이사를 왔는데 (맥도널드, KFC, 서브웨이 1분 컷), 다시 새로운 집을 찾아야만 한다. 지금보다 넓고 편안해야 하니 무조건 지리적인 조건은 포기. 어떤 회사, 어떤 일이든 마음만 먹으면 모두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일정 부분, 못해도 4년 정도는) 포기. 간질간질한 봄날에 외간 남자와 이자카야에서 소주 마시는 것도 앞으로는 영원히 포기. 내키는 대로 한 일주일 마구 늘어져있는 것도 포기. 

내 생일과 마땅이의 존재 확인을 축하하며 어머님이 선물로 주신 <축하합니다>라는 책. 축하를 마음껏 받아도 되는걸까.

왜 이렇게 속절없이 눈물이 나나 했는데, 아무래도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미련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간장종지 같은 나의 작은 세상에서는 정말 소중한 것들이었다. 이 작고 소중한 일상은 앞으로 펼쳐질 내 인생의 새 챕터에 영원히 포함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 서른다섯 해밖에 제멋대로 못 살아봤는데, 갑자기 앞으로 이십 년 간 다른 생명체를 책임지고 이인삼각, 삼인 오각 정도로 살아가야 한다. 어떡하지. 


어쨌든 우리 아기의 태명은 마땅이로 정했다. 사실 아기가 생기기 전부터 농담처럼 부르던 이름이었다. '아, 맞다! 이 날짜는 위험한데!'라며 장난을 치다 불쑥 생겨난 이름인데, 정말로 마땅이가 이렇게 생길 줄이야. 예상치 못했다는 뜻은 좀 거두고 아주 마땅히 사랑받는 아기, 복을 마구마구 가져오는 아기라는 뜻의 마땅이라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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