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집 출판
▶웬디레서 지음
▶김미림 옮김
직접 건축한 건축물을 본적이 없이 건축가의 평전을 읽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인 것같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루이스 칸의 평전인 벽돌에게 말을 걸다를 읽은 것은 단순히 건축가가 생각하는 건축이 어떤 사상과 철학을 가지고 만들어지는가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건물이 있고 그 건물을 건축한 건축가가 있습니다. 어려서 부터 수많은 건물을 보면서 자라왔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기준은 내가 살았던 집과 내가 공부한 학교건물 그리고 종교적 건물이 모두 일겁니다. 그 중에서도 집은 한 가정의 스토리와 정신 그리고 현재의 내가 있게한 과거의 영혼같은 것이 깃들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1967년생인 저는 10대까지만 하더라도 제가 사는 도시에 아파트가 드물때였습니다. 당시 거주의 형태가 단층이나 빌라 등 집합거주형태의 집들은 꽤 많았으나 아파트는 약간 극과 극의 형태로 지어지기도 했던 때였습니다. 예를 들면 아주 큰 평수의 주택으로 꽤나 경제적으로 윤택한 이들을 위한 것과 이와는 반대로 서민들을 위한 집단 거주형태의 아파트가 그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초등학교시절 아파트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는데 길죽한 통로를 가진 작은 평수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형태의 서민 아파트였습니다. 처음 살아보는 아파트에 대한 설레임 같은 것도 있긴 했지만 작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장 효율적인 형태의 거주 이외에 건축학적으로는 의미가 없는 주택이었습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또는 현대 건축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르코르비지에라는 건축가를 들 수 있겠습니다. 건축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에 대해 크게 반대하지는 않을 것같습니다. 이 르코르비지에가 급격한 도시화로 도시 거주시설이 부족한 파리에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유비테 바비타시옹이란 건축물로 오늘날의 아파트와 같은 건축물입니다. 1922년 무렵 르코르비지에는 도시 거주시설의 해결을 위해 작은 면적으로 고층건물을 지어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이 빛나는 도시의 구상은 고층 건물의 사이사이에 넓은 공터가 자리하고 햇빛이 밝게 내리는 자연이 많은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르코르비지에의 이러한 구상은 실제로 한국에도 많이 실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아파트는 건물과 건물사이에 주차공간을 만들고 그 사이에 자연이 있기 보다는 자동차만 가득한 그런 주거지역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빛나는 도시의 구상이 실현되지 못한 파리와 비교하면 안타까운 우리의 모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5년 후를 내다보지 못하는 정책과 천편일율적인 아파트의 거주 형태는 인간이 가장 편안함과 행복을 느껴야할 공간을 층간소음과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 지 조차 알 수없는 가장 프라이버시한 비인간화의 거주형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바로 이런 것때문이지 아닐까 싶습니다. 주목할 만한 건축물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주위에서 볼 수도 없고 내가 사는 공간이 가구의 배치만 다를 뿐 몇 천세대가 똑같은 구조의 집에서 살아가는 절대적인 공허함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이 책의 주인공인 루이스칸은 20세기가 시작하는 1901년생으로 전체이름은 루이스 이지도어 칸입니다. 원래 에스토니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란 유태인이며 본명은 이체레이프 쉬무일로프스키입니다. 그는 어릴 적 석탄이 탈때 내 뿜는 아름다운 빛에 매혹되어 그 석탄을 앞치마에 넣었다가 불이 붙어 얼굴에 화상을 입고 평생을 흉터와 함께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 어디에도 그 흉터로 인해 불행해지거나 사람들을 피해 숨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그의 흉한 얼굴과는 반대로 자신있게 자신의 소신을 말하고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들에 대해 한번도 의지를 굽히거나 위축된 적이 없었습니다.
루이스 칸은 어릴 적부터 회화와 음악에 주목할 만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건축가가 되기로 미래를 정한 이후에도 그의 그림실력은 다수의 전시회를 열수 있을 만큼 출중했습니다. 그의 이런 예술가적 재능이 건축에 접목되어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디자인의 창조로 이루어 지기도 한 것같습니다. 수많은 설계를 하였지만 실제 건축물이 되지 못한 설계안에서도 그만의 독특한 디자인이 많았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화상이나 장애에 대한 컴풀렉스를 가진 다수의 사람들이 조금 또는 과도하게 자기만의 아집이 있는 것과는 반대로 건축이란 모두 각자의 의견이나 생각을 나누고 기여하는 즐거운 상호 작용이 이루어지는 공동의 노력이라고 말하면서 같이 일하는 동료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도 하고, 건축주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등 사람들과의 융화에도 상당히 부드러운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건축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믿는 동료들과의 협업은 그가 거주공간을 깊이 사유한 건축가로서 살아가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자꾸 우리를 잡아당기는 뭔가가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뭔가 태곳적의 것, 뭔가 우리보다 한참 이전에 있었던 것에 가 닿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건축의 영역에 있을때 비로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을 건드리고 있음을, 그리고 건축은 아주 처음부터 진실한 것이 아니었다면 결코 인류의 일부가 될 수 없었으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고전 건축에서 많은 모티브를 채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고전 건축을 단순하게 도용하지 않고 반드시 그만의 재해석을 건물에 이용한다고 합니다.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켐벨미술관과 소크생물학 연구소가 가장 주목할 만하다고 합니다. 이 두 건물의 특징은 빛의 재해석이라고 할만큼 자연광을 잘 활용한 건물이라고 합니다. 그는 "빛이 건축물에 닿기 전에는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라는 멋진 말을 남겼습니다. 빛이 외부의 벽에 닿아 만드는 아름다움과 그 빛이 자연스럽게 건물을 통과하여 구석구석에 인공의 빛보다 더 뚜렷한 빛으로 건축물의 용도에 맞는 역활을 더 증진시키는 것을 켐벨미술관과 소크생물학 연구소에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평전에서는 두 건물에 대한 지은이의 견해가 잘 설명되고는 있지만 챕터앞의 흑백사진 한장으로는 뭔가 부족한 것을 많이 느낍니다. 사실 건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책을 보면서 건물을 떠올리기는 많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캠벨미술관과 소크생물학 연구소의 이미지를 구글링하면서 읽었습니다. 아래는 두 건물의 대표적인 사진입니다.
칸은 건축이란 사려깊은 공간의 창조다라고 말했습니다. 겉으로만 멋진 건축물이기보다는 그 속을 채우고 담아내는 것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사유하면서 만들어내는 그의 건축은 거주 공간을 깊이 사유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를 추종하는 많은 건축가들은 그를 철학하는 숭고한 건축가라고 합니다. 비록 인간적으로 볼때 첫사랑이기도 한 그의 아내를 두고 다른 여성을 만나고 혼외자식까지 둔 것은 마땅히 비난받은 점이기는 하지만 이 또한 여성편력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그가 만난 여성들이 그의 사유에 많은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나이가 이제 많아지는 시기에 다다랐습니다. 그렇치만 한가지 꿈이 있다면 자신만의 집을 만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루이스칸의 평전에 나온 루이스칸의 철학이 담긴 집, 그런 생각들이 내가 어떠한 집에서 살아가야하는지 조그만 힌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이 꿈을 위해 목공도 배우고 많은 건축물들을 찾아다니며 여행을 하기도 합니다. 아직은 그 일이 언제쯤 현실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도 조금씩 다가 가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