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멈춤, 교토>>, 송은정 지음, 꿈의지도 펴냄
일본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가 ‘교토’라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부터 슬그머니 이곳을 흠모하고 있다. 만일 교토에 가게 된다면 관광객으로 북적한 관광지는 제쳐두고 골목 곳곳을 거닐어 보고 싶다. 느리게 걸으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과 움직임을 읽을 수 있다면, 발길이 머무는 카페나 가게 안으로 성큼 들어가 고유한 색깔에 흠뻑 젖을 수 있다면, 산과 강을 바라보며 마음에 쉼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서 검색어로 ‘교토’를 쳐본다. 꽤 많은 책이 올라오니 일단 최신순으로 정렬한 후, 각 책의 성격을 살핀다. 관광 위주의 책은 제외하고, 편집이 요란한 책도 일단 밀어낸다. 저자의 눈으로 교토를 한 번 통과시킨 뒤에 마음으로 교토를 읽어낸 책을 고르겠다는 기준이 선다. 단아한 사진에 담백한 글이 돋보이는 책이 있다. <<일단 멈춤, 교토 -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교토 골목 여행>>이라니! 제목이 모든 걸 말하고 있다. 더구나 저자는 작은 책방의 주인장이기도 했다니 어떠한 정서를 지닌 사람인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바로 이 책이다.
‘서 두 르 지 않 고, 느~~긋~~하 게 일.단.멈.춤.’이란 모토로 책을 읽어 나간다. 저자가 교토 여행 내내 이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며 나도 같은 마음으로 따라가 본다. 책의 전체 구성을 파악하고 부분을 읽어내야 책 읽기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이것은 마치 교토역이 교토 전체 지도에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가 파악이 되어야 덜 답답한 것과 같다. 책에는 저자가 쓴 에세이 20편과 교토에서 만난 로컬 공간 113곳이 소개되어 있다. 교토를 동,서,남,북,중앙 다섯 구역으로 나누어 지도를 실어두었고, 다시 각 구역을 잘게 쪼개어 안내를 해준다. 저자가 소개한 공간은 카페, 식당, 가게, 박물관, 책방, 목욕탕, 온천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책 중간중간에 쉬어가는 코너로 ‘교토의 아침을 시작하는 법’, ‘공간의 재발견’처럼 한 주제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하기도 한다.
저자의 눈을 통과하고 마음으로 써 내려간 에세이가 담백하다. 스무 편을 야금야금 아끼며 읽어 나간다.
“누군가 내게 교토를 위한 하루 일정을 추천해달라 묻는다면 조심스레 ‘후와후와 투어’를 제안하고 싶다. 정체불명의 이 투어는 교토시청과 교토교엔 사이의 골목을 거니는 단출한 코스다. 투어명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안자이 미즈마루가 쓴 그림책 제목에서 따왔다. 책에는 후와후와가 ‘커튼이 살랑이는 모습’ 등을 표현한 단어라고 나오는데, 여기에 ‘흩날리는 나뭇잎의 움직임’이라는 설명을 내 멋대로 한 줄 덧붙였다. 투어의 모토가 바람결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골목을 유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33쪽)
교토의 골목을 바람이 밀어주는 대로 나뭇잎처럼 가볍게 떠다니는 모습이 상상된다. 딱히 어떤 경로로 움직이겠다고 ‘계획하지 않고’, 걷다가 살짝 ‘옆길로 새어’ 보기도 하고, 미리 많은 정보를 ‘조사하지 않은’ 채 마냥 걸어본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타니구치 지로의 만화 <<우연한 산보>>에 나오는 산보의 세 가지 원칙을 여기에 적용해 본다면 마냥 좋겠다.
글만큼 단아한 사진은 어느새 교토의 어떤 골목으로 나를 데려간다. 큰길 가에 있는 화려하고 커다란 브랜드 카페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터를 잡고 있는 낡고 좁은 집으로 들어가 달고 시고 쓴 맛이 나는 드립커피를 마신다. 집밥이 그리우면 다다미방에 앉아 주인이 차려주는 따스한 저녁과 마주할 수 있다. 우연히 만난 빈티지한 잡화점, 주인이 직접 만들어 파는 올망졸망 귀여운 그릇 가게, 오래된 빈집을 개조한 상점은 건물 자체에 대한 흥미도 갖게 한다. 공간 113개 마다 주소, 가는 법, 운영시간, 휴무일, 메뉴, 가격, 전화, SNS까지 상세하게 적어둔 저자의 꼼꼼함에 놀란다.
만일 지금 당장 교토 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일단 멈춤, 교토>> 책을 들고 여기에 나와있는 공간들을 따라 가 볼 것인가? 답은 ‘아니다’이다. 이 책을 통해서는 여행의 방법과 즐거움을 배운 것으로 만족한다. 나는 또 다른 창의적인 여행자가 되어 골목을 누빌 것이다. 우연히 맞닥뜨리는 사람과 공간, 그리고 사건을 즐기며 새로운 여행을 할테다. 그때는 내 눈을 통과한 교토를 내 마음이 읽어내는 대로 새롭게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