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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ent books Nov 25. 2021

스러지는 것

스러지는 것.



결코 온전히 이전처럼 회복되지 않는 일상.

그 지침에 말로 다할 수 없는 피로감을 느낀다. 모두가 그렇다.

단 한 가지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아서 신났던 점은 지루했던 회식이 거의 최소화되었다는 점뿐이다. 그 일상만큼은 최대한 더디고 덜 온전하게 회복되길 바라고 있다.


 밖에 모든 점들에서 ‘좋은’ 일상은 너무나 더디게  원래의 모습으로 회귀하려는 미세한 움직임만 보이고 있다. 자유로운 국내외 이동, 공공장소에서의 인원 규제, 경제 활동, 사적 모임 모든 것들이 아주 더디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들이 완전히 예전처럼 동일한 모습으로 회귀하진 않을 것이다. 뉴턴의 등장 이전과 이후의 물리적 세계관이 같을 수 없다. 세계대전 전후의 정치역학적 상황이 같을 수는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봄과 가을이 없어지고 있다고들 한다. 가을에 항상 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는, "반팔 좀 입다가 보니 조금 있으면 패딩 입게 생겼다"와 같은 식의 급격한 날씨 변화에 따른 옷차림의 변화에 관한 한탄 같은 표현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몸소 그러한 변화를 자신들의 옷차림으로 실천에 옮기고 있다. 최저 기온이 '-1도'가 된다는 날씨 예보가 전날 뉴스로 나오기라도 하면, 지난주까지는 얇은 가디건 하나 걸치고 나왔지만 이제 너도나도 두꺼운 패딩이나 롱코트 따위를 입고 출근길에 오른다. 실제로 그날 주간 활동하는 때 기온은 영상 10도 내외는 될텐데 말이다.


내 생각에는, 다들 조금 유난이다. 이상기후로 하루만에 10도 이상의 기온차를 보여 몸이 적응하지 못하는 때가 간혹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디스토피아적 영화에서 그리는 것처럼 결코 믿을 수 없는 극단적인 기후의 변화 한가운데에 있는 것은 아직 아니다. 하지와 동지 때 즈음의 해의 길이는 여전히 일년 중 가장 길거나 짧고, 10월 말이나 11월 초면 어김없이 활엽수에 단풍이 짙게 든다.   


스러지는 것은 어쩌면 평소의 사람들의 태도이다. 하루하루 날씨의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할 틈도 여유도 없는 사람들은 어느날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어쩔 줄 몰라한다. 사실 이번 10월에는 연이어 찾아온 아열대고기압과 한랭한 바람에 의한 롤로코스터 같은 날씨 사례야 분명한 이상 기후여서 모두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거의 일반적으로 날씨의 변화는 점진적으로, 그리고 순리에 따라 조금씩 모습을 달리하며 사람들을 찾아온다. 사전에 조금씩 신호를 주면서 말이다. 그 미묘한 변화에 사람들은 둔감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주방 문을 활짝 열 때 느끼는 그날그날의 공기의 서늘함 정도, 햇빛의 조도 등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미래에셋 앱을 켜서 그날 주식장을 살펴보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날씨 뉴스를 보고 기상캐스터가 "오늘 하루는 체감온도가 영하권입니다"라는 얘기를 듣고선 그저 옷장을 열어 패딩을 꺼내 입고 밖을 나서는 것이다.   


계절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가장 효율적이고 사람들과 덜 부대낄 수 있는 편안한 이동, 그리고 비나 먼지 등에 아끼는 옷이나 가방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자차를 항상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갑자기 찾아온 듯한 날씨의 변화가 그들에게는 그렇게 크게 와닿지도 않는다. 날씨에 의한 불편함의 경험은 그저 주차한 차에 오르고 내릴 때 잠깐의 순간일 뿐이다.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미래세대가 살아갈 환경이나 건강 이슈가 아니다. 이번 미세먼지 때 등장한 정치적인 이슈에 따라, 자신이 투자한 관련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지하철 내에서 이제 사람들이 아무도 책을 보지 않는 것처럼, 단풍이 소복이 쌓인 길을 걷는 것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일부러 조금의 여유를 내서 경험하려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모두가 그런 감성을 기억 어딘가에 새겨놓고 있으면서도, 바쁜 일상 속에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와 넉넉한 마음이 스러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은 경우에 따라 단조롭고, 경우에 따라 신비롭다.


스러지는 일상의 경험을 통해, 팬데믹 이전의 소소한 일상, 루틴의 소중함에 애타는 마음은 애써 만들어내려고 하지 않아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터져나온다.


가을과 겨울이면 입주위가 건조해져서 많이 트곤 한다. 지난 겨울도 마찬가지고, 이번 겨울에도 아마 마스크 때문에 립밤을 바르는 날이 거의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괜스레 씁쓸하다. 익숙했던 일상이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씁쓸하다.


물론 그 모습이 정답인 것도 아니고,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닌 것들도 많다. 어디를 가든 - 그곳이 지하철 안이든, 화장실이든, 엘리베이터든, 사람들과 식사하는 장소이든, 심지어 걸어가고 있든 - 거북목으로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사람들, 아침마다 똑부러지는 자산관리사나 투자자가 되어 부동산과 주식만 얘기하는 사람들, 팬데믹으로 인해 직접적인 만남을 대체하는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공간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의 장밋빛 미래로 가득한 기사들.


어쩌면 시간의 변화에 따른 기술의 발전으로 바뀐 풍경일 수 있겠지만, 내가 감정적으로 느끼는 평범하면서도 이상적인 일상의 모습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단순히 발전된 기술에 대한 반감의 태도로 생겨난 감정은 아닐 것이다. 미묘한 주변의 변화에 둔감하고 유행에 쉽게 편향되는 사람들의 모습, 스러지는 일상을 대체할 언제나 새롭고 돈이 되는 짜릿하고 편리한 것들만 신경쓰면 되는 우리네 모습에서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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