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탓이 아니었다.
분명히 누군가,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신경이 그쪽으로 쏠렸고,
신호등 앞에서 멈춘 순간,
등 뒤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그냥 우연이라고 넘기기엔 너무도 선명했다.
집까지 오는 길, 일부러 두 번을 돌아갔다.
지나치게 평범한 골목을 선택했고, 편의점에 잠시 들렀다가 괜히 화장실에까지 들어갔다.
그런데도, 누군가의 존재는 계속 따라왔다.
현관문을 닫고 숨을 고른 나는,
아무 말 없이 불을 껐다.
그 어두운 실내에서 천천히 커튼을 젖혔다.
그리고,
그들은 있었다.
두 명.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성였다.
고개를 들어 올리지도 않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척하면서,
분명히 이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 분쯤 지나자,
오가는 사람들이 조금씩 많아졌다.
점심시간 즈음, 골목의 소음이 커지자
그들은 자연스럽게 골목을 빠져나갔다.
사라지기 전, 한 명이 잠시 고개를 들고 내 창 쪽을 올려다봤다.
나는 본능적으로 뒤로 몸을 뺐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더는 여기에 머물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도망쳐야 한다.
가방 하나를 꺼냈다.
생각보다 손이 빨랐다.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위기 상황’ 시뮬레이션이,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말을 하면 다들 웃었고,
가끔은 미쳤다는 눈빛도 받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상상들이 처음으로 도움이 되고 있었다.
외장 SSD, 구형 스마트폰, 비상용 현금, 간편식, 휴대용 라디오,
내가 미리 준비해둔 목록대로 가방을 채웠다.
신발은 바닥이 얇고 오래 걸어도 무리가 가지 않는 걸 골랐다.
지금부터는 몇 시간 단위가 생존과 직결될 수 있었다.
그때,
폰에 진동이 울렸다.
발신자 미표시.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내가 도울 수 있다.
지금 상태로는 며칠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연락하지 않으면, 곧 죽게 될 거다.”
메시지엔 이름도, 위치도, 어떤 약속도 없었다.
도움이라는 말보다,
경고처럼 느껴졌다.
누구지?
경찰? 정부? 해커?
아니면… 그들 중 하나?
믿을 수 없었다.
지금은 누구도, 아무도.
나는 곧장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꾸고,
평소 쓰던 공유 차량 앱에 접속했다.
근처에 괜찮은 차량이 하나 있었다.
예약했다.
바로 그 차량이 있는 곳까지 가기 위해,
택시를 호출했다.
차가 도착할 때까지,
나는 불을 끈 채로,
침묵 속에서 거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창문 밖은 여전히 평범했고,
거리는 평온한 듯 보였지만,
이제는 어떤 것도 평범하지 않았다.
2. 행운의 끝, 불행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