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숙 감독의 <당신의 사월>
2014년 4월 16일. 늦은 그날의 일기.
대학생이었던 나는 한창 중간고사 준비로 허덕이고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시험기간만 되면 모든 것이 재밌어지지 않는가. 조금 공책을 끄적이다가, 갑자기 책상 정리를 하질 않나. 또 잠시 앉아서 공부하는가 싶더니, 불현듯 거슬리던 손톱을 자르고. 심지어는 보지도 않던 뉴스 기사까지 흥미롭게 봤던 한심한 대학생의 평범한 하루였다.
그러던 중 속보란에 몇몇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배 한 척(처음엔 여객선인지조차 몰랐다)이 사고가 났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저 아이고 안됐네라는 단편적인 반응만을 할 뿐, 그렇게 깊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그런 사고쯤은 금방 해결되어 그저 뉴스에서 짧게 스쳐 지나가는 사건쯤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몇 분 후 '전원 구조'라고 발표되었고, 나도 슬슬 방황을 마치고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띵"
고요하던 나의 집중력을 깨는 알림음이었다. 친구로부터 온 카톡이었다.
"배 하나가 침몰하고 있대"
처음엔 코웃음을 쳤다. 얘는 웬 뒷북이야. 이미 다 구조됐다고 떴구만. 무시하려던 찰나, 또 다른 친구가 다급히 링크 하나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바로 실시간 뉴스 방송이었다.
어, 근데 왜 구조자 수가 저거밖에 안되지? 분명 전원구조랬는데?
화면엔 참혹한 숫자와 함께 가라앉고 있던 배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영상이 아니라 사진 같기도 했다. 그저 배의 일부분만이 고요하게 떠있고, 화면 상단에 있던 숫자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파란 배의 선미만을 바라보았다. 새로운 전개를 기다리며. 그때까지도 곧 다 구하겠지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곧 결론이 나겠지라는 마음으로 한참을 기다렸다.
하지만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아무런 변화도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구조하는 장면을 기다렸던 나였지만, 결론적으로는 그저 침몰하는 장면만을 보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힘없이 가라앉는 장면을, 그것도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 국민에게 보여준 셈이 아닌가.
무슨 B급 호러무비도 아니고. 아니 차라리 영화였으면 좋았을 걸. (아니 웬만한 영화에서도 이런 장면들은 은유적으로 표현하거나 빠르게 스킵했겠지)
<당신의 사월>은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유가족과 같은 직접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것을 각종 미디어로 지켜보던 그 날. 그날의 당신은 어땠나요?
영화는 세월호와 전혀 관계가 없던 대한민국 국민 5명의 인터뷰를 교차하여 보여준다. 기존의 세월호 관련 영화들이 유가족과 관련한 진상규명 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당신의 사월>은 이 사건과 1%의 인연도 없던 이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에 대해 중점을 둔 것이다. 이는 특히나 이 '세월호'라는 소재에 있어서 상당히 영리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세월호'라는 소재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굳이 나서지 않더라도, 여기저기서 사건에 대한 논의와 추모행사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러나 7년이 흐른 지금.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커녕, 심지어 7주기 인지도 모르고 지나간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개인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점점 잊혀가는 사건이 된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아무리 새로운 사실을 공유, 혹은 지금까지의 상황이 이렇다고 말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이건 마치 설교하는 선생님과 그 앞에 철저히 귀를 닫은 사춘기 소년의 모습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의 사월>은 강압적으로 무언갈 알려주는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안부를 묻는 친구와도 같았다.
"너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도 그렇다. 우리 같이 이 트라우마를 마주해보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로 먼저 운을 띄움으로써, 자연스럽게 관객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연 것이다.
올해도 많은 비가 내렸다. 마치 잊지 말아 달라는 듯, 끝까지 기억해달라는 듯 말이다.
혹자는 진상규명이 끝나면, 비로소 '세월호'도 끝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전 국민이 이 트라우마를 직접 대면하고 극복하게 되는 날이 비로소 끝이 나는 날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세월호'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