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가 라이트의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와 톰 후퍼의 <캣츠>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현대인들은 단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 지하철에서 SNS를 하고, 직장에서는 하루에도 2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시행한다. 그런 현대인이 어두운 공간에 2시간이나 스스로를 감금시키는데, 바로 영화이다. 영화 <캣츠>도 그러했다. 소위 4대 뮤지컬로 불리는 <캣츠>의 실사화 소식과 함께 미국의 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캐스팅으로 사람들의 기대감은 높아진 상태였다. 게다가 톰 후퍼가 누구인가. <킹스 스피치>, <대니쉬 걸>의 휴머니티부터 뮤지컬 대작 <레미제라블>까지. 그야말로 탄탄한 필모를 입증해온 그가 아닌가. 때문에 사람들은 짧지만 강렬한 환상적인 경험을 위해 귀한 2시간을 쪼개어 영화관을 찾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그 바쁜 시간 속에서도 겨우 왔건만, 영화는 절정도 없이 리듬감도 없이 진행되었다.
애초에 <캣츠>는 '고양이들만의 세상 그리고 화려한 파티'라는 비현실적인 소재를 지녔다. 그 누구도 <캣츠>를 보며 "말도 안 돼!" 라며 이성적 딴지를 걸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관객들은 소재가 비현실적임을 이해하고 있고, 그들이 기대하는 것도 비현실적인 그리고 환상적인 영화라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캣츠>에서 비현실적인 것은 고양이 배우들뿐이다. 배경은 그저 흔한 유럽의 마을(그마저도 그저 뮤지컬 무대를 답습한 것으로 보이며, 영화적 창의성이 보이지 않는다)을 가져온 듯하며, 쓸데없이 고양이들의 털을 실사처럼 합성하여 배우의 얼굴과 큰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불쾌한 골짜기'를 느꼈다는 평이 다수를 이뤘다. 원작의 매력포인트는 인간의 연기력으로 고양이를 섬세하게 잘 따라 했다는 점이다. 고양이가 나온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현실적 콘셉트를 가진 영화라면, 그것으로 끝을 봐야 한다. 그것이 관객이 바라는 것이며, 그것이 재미 요소이다. 바로 이 점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국내에서는 <베이비 드라이버>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가 그것이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백수 너드인 스콧 필그림이 꿈의 이상형 라모나와 사귀기 위해, '사악한 전 애인 연맹'이라는 7명의 전 애인 악당들과 싸우게 된다. 영화는 전반적으로는 일반 하이틴 로맨스의 흐름을 따라간다. 너드의 남자가 이상형 여자를 만나고, 그녀와 여러 역경을 만나면서 성장을 하여 결국 사랑을 쟁취한다는 스토리. 하지만 에드가 라이트가 누구인가. 병맛의 귀재 아닌가. 클리셰적인 설정을 비틀면서, 그의 입맛대로 예측 불가능한 하이틴 로맨스를 구축해나간다.
가령 3번째로 나온 사악한 애인을 보자. 이 무시무시한 초능력을 가진 남자는, 무려 채식으로! 초능력을 갖게 되었다. 유제품에서 힘이 나온다나 뭐라나. 여기서 초능력을 얻게 된 과학적 논리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악당이 채식을 통해 초능력을 얻었고, 그 능력을 통해 주인공과 싸우고 있다는 현재가 중요할 뿐! 여기서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그저 병약해 보였던 주인공이, 의외로 엄청 싸움을 잘한다는 것이다. 에드가 감독은 이를 통해 화려한 액션이라는 기존의 재미 요소를 유지하는 한편, 찰진 병맛 설정들을 통해 제3의 재미를 구축한다.
(TMI: 또 하나의 재미있는 점은 웃기는 악당들의 캐스팅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의 크리스 에반스부터 캡틴 마블의 브리 라슨까지. 밖에서 멀쩡하고 멋있기까지 했던 배우들이, 에드가의 세상 속에서 관객들을 가지고 노는 프로 개그맨이 되어 있다.)
하지만 역시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최고 장점은 '음악'이다. <베이비 드라이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에드가 감독은 상황에 따른 탁월한 선곡은 물론 음악에 맞춘 리듬감 있는 편집을 통해 마치 관객이 같이 영화를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물론 이번 영화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에서는 병맛이라는 설정에 충실하여, 음악도 흐름 따위 무시하고 그저 틀고 싶을 때 연주한다...!
하지만 <캣츠>는 어떠했는가. 그 유명한 음악과 화려한 안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와 편집을 전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가장 격렬한 카메라 움직임은 그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일 뿐이며, 편집도 음악의 리듬 그리고 배우의 안무와는 이질적인 템포로 전환된다.
위처럼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가 화면 전환에 보통 1초가량이 소요되는 것에 비해, <캣츠>는 3초 이상이 소요되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다. 고양이 털에 쏟아부었던 CG를 배경에 조금이라도 할애했더라면, 그나마 느린 화면 전환을 커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무런 효과 없이, 아무런 리듬 없이 그저 배우들의 노래와 안무만 보여주는 화면을 보니 그냥 뮤지컬 실황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때문에 톰 후퍼 감독에게 말하고 싶다. 내한해서 '기생충'에 오스카 투표를 하겠다, 옥주현을 캐스팅하고 싶다 등 무의미한 공수표만 날릴 것이 아니라, 영화의 근본적인 요소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고. 따뜻한 인간의 감정을 보여줬던 그의 전작들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