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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si Apr 01. 2024

그 해 여름의 이야기

Shot on iphone

*아이폰으로 찍고 보정한 사진들을 올립니다.

그해 여름 읽던 책

 나는 어쩌면 너의 이름을 발견하고 싶어 책을 뒤적였는지 모른다. 페이지마다 포스트잇을 붙일 땐, 너일까 싶었고 그 흔적들은 쌓여 계단이 되었다. 그해 여름, 내가 읽던 책엔 너가 없었다.

 여름은 무척 더웠고 눅눅해지는 페이지에 나는 종종 기절하고 싶었다. ‘습도가 이렇게 높은 날에 책을 읽어도 될까?’ 독서를 가을로 미루고 싶었다. 나는 물 속에 있는 것만 같아. 책이 흐물흐물해져 너를 찾는 여정이 고통스러울까 걱정되었다.

 너는 더위를 참지 못하는 사람인데, 너는 모든 옷을 다 벗어던지고도 여름이 싫다고 외치던 사람인데. 포스트잇을 붙이며 헨젠과 그레텔을 생각하고 눅눅해진 과자를 훔쳐먹는 들짐승들을 생각한다. 다행히 나의 계단은 맛이 없다.

촬영 스튜디오의 풍경

 너를 찾는 여정에도 촬영을 했다. 다행히 눅눅하진 않았고 또 다행히 푹푹 쪘다. 나는 기절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기절하지 않았다. 파랑과 노랑이 보색이라던 선생님의 말씀에 시선을 돌렸다.

 쉬는 시간엔 아스팔트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과 하늘 사이에 미생물들이 기어 다니면 하늘에 시선을 두었다가 다시 꿈틀거리는 것들을 봤다. 너도 이 장면을 봤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기절하고 싶었어. 그해 여름은 한 마디로 최악이었거든.

부산에서 본 건물

 건물 앞에는 바다가 있었어. 얼마나 깊을까 보다 얼마나 빠르게 죽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했지. 물 밖에 있는 굽굽한 느낌보다 바다의 습도가 나을 것 같아서 몇 번이고 생각하다 뛰어들었어.

 근데 그거 알아? 바다에는 계단이 없더라. 내가 놓고 간 흔적들은 모두 물고기가 다 먹어버렸어. 내 계단은 아주 딱딱한 돌로 만들었는데, 그 맛없는 걸 누가 다 먹었을까. 내 흔적들은 증거야. 애타게 여름을 보내고 싶었던 나의 증거.

 

 한참 헤엄을 치는데, 한 물고기가 와서 묻더라 여기서 뭘 하냐고 나는 너를 찾으러 왔다고 했어. 혹시 내 증거들을 먹어치운 아이들을 아냐고도 물었지 모두 꼬챙이에 꽂아 구워 먹어버리겠다고 소리를 치면서. 고기친구는 나를 겁내지 않더라 더 빨리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나 봐. ‘이봐, 증거들은 내가 다 먹어치웠어 그리고 너는 이 바다에서 나가는 것이 좋을 거야. 저 밖의 굽굽함과 이곳의 굽굽함은 차이가 없거든 ‘ 나는 고기친구의 귓속말을 아주 주의 깊게 들었지.

뮤지엄 산

 옷자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말리지도 않은 채 나는 그냥 여행을 가버렸어. 너를 찾는 일은 그만두고. 하늘에 십자가가 보이는 곳으로 말이야. 그 십자가를 올려다보며 생각했지. ‘아, 여름이 끝나려나 보다’

 맞아. 하늘은 조금 더 짙게 색을 냈고, 습기도 가져가버리더라. 물보다 여기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그해 여름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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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힘들었던 여름날을 지나왔습니다. 내 마음은 왜 그리 쉽지 않았는지, 고통과 울분으로 가득 찼던 것만 같아요. 여름을 지나면 조금 더 나은 삶이 펼쳐질 것만 같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저 비슷비슷한 날들의 연속이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조금 덜 덥고, 조금 덜 습하다는 이유로 해낼 수 있는 힘이 좀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겨울을 지나며 다가올 여름에 걱정은 되지만, 그래도 제가 겪은 최악의 여름을 버텼으니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요. 봄에 여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지만, 벅찼던 여름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대단한 사람이 된 것만 같습니다.


* 찍어 놓은 사진들로 종종 글을 쓰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더 많은 사진은

https://www.instagram.com/_hon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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