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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머스썸머 Jul 02. 2018

사랑의 생애 / 이승우

이렇게나 불안한 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또 기꺼이 불안해하고야 말겠구나.

1. 

사랑의 생애를 처음 읽기 시작한 것은 작년 늦겨울, 영화 <문라이트>를 본 날이었다.
한 개인의 생애를 따라 주인공이 경험하는 사랑의 형태를 따라가는 영화였는데, 등장인물의 내면에 자리한 사랑이라는 존재를 따라간다는 설정이 비슷해서 영화평을 대신해 이 첫 문장을 남겼던 기억이 난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홀려서 사랑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내부에서 생을 시작한다.”
 
소설은 3인칭 시점으로 옴니버스 형태를 취하고는 각 챕터의 주요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꽤 재밌게 설정돼있다.
그중에서도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운 남자(형배)’와 ‘사랑이 떠나가는 것이 두려운 남자(영석)’ 사이에서 선희의 시점이 현재로 돌아오는 호프에서의 격투 장면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 하다.
(이 장면에서 “어떻게 당신이 저 사람의 선희야? 어떻게 당신이 그럴 수 있어?”라는 문장은 공교롭게도 동명의 여주인공을 내세운 영화 <우리선희>를 떠오르게 한다.)
한편, 미혼의 여성인 내게 두 남자 주인공은 남자 친구 감으로 어느 한 명 고르기 어려울 정도로 지질한 구석이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이 노련한 남성 작가는 끊임없이 나 같은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을 쏟아내고는 한다.
이를 테면 이런 문장.
 
“사랑이 괴로울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랑이 불가능한 것을 욕망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시작한 사람이 욕망하는 것은 연인의 마음이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향해 보고 싶다고 말할 때, 연인은 자기 안의 의심과 불안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P.206
 
“그는 연인을 끌어당길 만한 매력이 자기에게 없기 때문에 그녀가 언제든 자기를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항시적으로 시달린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가 보고 있는 것이 눈앞의 현실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열등하고 불안하고 조마조마하고, 세상에서 가장 허약한 것이 그의 감정이다. 그는 눈앞의 현실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감정이 시키는 말을 한다.” P.230
 
사랑(혹은 연애)을 시작하고, 안정기에 접어들기 전. 모두에게 통용되는 사랑의 발단/도입에 해당하는 시점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드는 생각, "이렇게나 불안한 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또 기꺼이 불안해하고야 말겠구나."
 
 
 
2.  
“그녀가 그에게 직접 사랑한다는 말을 해왔을 때는 이상하게 가슴이 움츠러들고 근육이 경직되는 걸 느꼈다. 그녀를 향한 자기의 감정이 단순한 호감일 뿐이어서라고 단정한 그는 그녀의 고백을 못 들은 척했다.
(중략) 사랑하는 일이 생길까 봐 심각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걸 모르거나 모른척했다.” p.65
 
 


3. 언젠가 마지막 장면에 두 주인공이 처음 사랑에 빠진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영화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었다. ‘와, 사랑의 기승전결이 모두 다 담겨있네.’
이번 독후감에 영화 얘기를 꽤 많이 하게 된다. 책의 주제나 구성이 영화 같은 면이 많아서일까.
덧붙여 내가 정의한 사랑의 기승전결, 결국 사랑의 생애라고 오래전 메모해둔 것을 붙여본다.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가 아니면 안 될 것 같고/
서로가 아님을 알고/
다시 서로를 그리워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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