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연 오프닝은 역시 시 낭송이 제격이겠죠
다들 우스갯소리처럼 생각하지만 나는 정말 60번째 생일을 그 어느 생일보다 즐겁게 보낼 요량으로 몇 가지를 기획중이다.
셀러브레이션의 오프닝은 아무래도 TPO를 고려해 시 낭송이 제격이겠지. 아직 30년이 남았으니 바뀔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역시 저의 으뜸이, 2010년대 후반 한국문단의 아이돌 박준 선생님의 시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중에서도 그의 두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에 첫번째로 수록된 '선잠'. 이 시로 말할 것 같으면은 말입니다..
2018년 어느 날, 회식에서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던 녀석이 전화를 걸어온 밤이었다.
아파트 단지 입구쯤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던 길에 전화해서는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뭐하냐고 묻는 일이야 전부터 종종 있었다. 그치만 그 날은 꽤 오랜만의 전화였으니까, 게다가 지금 여자친구와 별고 없이 잘 만나고 있다는 얘기를 (정말 알고 싶지 않지만) 들어오고 있던터라.. 누워서 tv 예능프로그램 보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지 않았달까!
"음.. 그냥 누워서 책 봐"
평소 같았으면 그랬구나 하고 말았을텐데, 그날따라 무슨 책을 보고 있느냐고 물어오는 녀석.
마침 리모콘 옆에 있던 책을 집어들고보니 하필 시집이다. 역시 거짓말은 쉽지 않다.
술이 제법 취했는지 좀 걷다 들어가겠다며 좋았던 한 편만 읽어달라기에 이르는데..
짧은 시의 이면에 담겨있을 많은 장면들을 각자의 사연에 비춰 행간의 ‘의미’를 찾는 일, 나말고도 애달픈 사연 하나쯤 갖고 사는구나 안도하던 밤이었다.
그 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던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일이었다가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선잠> 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