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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안 Nov 01. 2021

이미 흉으로 가득한 몸에 스스로 낸 흉터

타투의 의미

“이 부위는 작업도 까다롭고 관리도 까다로운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전 꼭 여기에 하고 싶어서요. 부탁드려요.”


여섯 번째 타투였다.

부위는 뒷머리가 끝나는 지점과 뒷목이 시작되는 바로 그 지점, 머리를 내리면 보이지 않지만 올려 묶으면 살짝 보이는 위치. 나는 꼭 그곳에 그 문장을 새기고 싶었다. 다른 위치는 안됐다. 내게는 꼭 그 부위여야만 했다. 그만큼 의미가 큰 것이기에.






타투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하고 싶었다. 망설였던 이유는 첫 번째, 돈이 없어서. 두 번째, 아플까 봐. 세 번째, 나중에 후회할까 봐였다.

10년을 고민했다. 여전히 같은 자리에 같은 문양을 하고 싶었다. 타투 마니아라면 코웃음이 날 정도로 작은 미니라인 타투였지만 꽤 오랜 시간 고민하며 결정했고, 원래 하고 싶었던 손등은 잘 지워질 수 있으니 안정적인 부위에 하는 게 좋겠다는 타투이스트의 조언에 따라 부위만 바꿨을 뿐 내가 상상했던 결과를 만족스럽게 얻었다.

첫 번째 타투는 라이언 킹의 킬링 포인트인 ‘하쿠나 마타타’ 심벌이었다. 하쿠나 마타타는 내가 투병 중에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외웠던 주문이다. 스와힐리어로 문제없어, 즉 No problem 이란 뜻이며 라이온 킹에서 품바와 티몬, 그리고 심바가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다섯 살 배기 어린 내게 퍽 크게도 각인되어, 무려 20년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 첫 직장에서 판 명함의 한 줄 글귀로도 들어갈 만큼 소중한 문장이었다. 이 정도 의미라면 내 몸에 지닐만했다.


첫 회사 첫 명함에 넣었던 글귀, 그만큼 소중했던 나의 문장



한 번 하고 나니 이젠 레터링이 하고 싶어 졌다. Birdy라는 가수의 ‘Wild horses’라는 가사의 한 구절인데, 내가 그 드세다는 백말띠인 것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가사가 정말 좋다. 그래서 곡 자체가 내겐 남다르다.  나는 이 곡에서 ‘ I’ll survive and be the one who’s stronger’ 이란 가사를 팔뚝에 박아 넣었다. 누구보다 사는 게 적성에 안 맞는 나지만, ‘꼭 살아남아서 짱 세지리라’ 역설적이게도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죽고 싶을 때마다 내려다보려고 잘 보이는 왼쪽 팔뚝에 했다. 확실히 힘들 때마다 보면 자극이 된다. 꼭 살아남아서 더 강한 사람이 되어야지.






 3,4 번째 타투는 컬러 포크 타투로  물론 각자의 의미가 있지만 여기선 생략하기로 한다. 


궁금하실까봐 보여는 드림


5번째 타투는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에서 등장한 죽음의 성물 로고를 새겼다.






죽음의 성물 세 가지를 모두 모으면 죽음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는데, 나는 그 세 가지를 내 손에 넣고 싶었다. 세 번, 자잘한 에피소드까지 합치면 총 다섯 번의 황천길을 건널 뻔했던 나로선 원하든 원치 않든 불사조란 별명이 있을 만큼 생명력이 강하니, 유치한 말로 들리겠지만 기왕이면 죽음의 지배자가 되고 싶었다. 해리포터 정주행을 끝내자마자 오른쪽 손등에 죽성 마크를 심었다.


그리고 6번째는 내게 가장 의미가 깊은 레터링이자 듣자마자 ‘이거다’ 싶었던 문장인데, sia의 ‘the greatest’라는 곡에서 켄드릭 라마가 피처링한 부분인 ‘scar may bless you’라는 가사였다. 나는 이 레터링을 뒷 머리카락이 끝나고 목이 이어지는 바로 그 부분에 박아 넣었다. 평소에 머리카락을 풀면 보이지 않지만 포니테일로 묶으면 보일 위치다. 타투이스트는 이 부분에 작업하는 건 꽤나 까다롭다고 했지만 나는 꼭 여기에 해야 했다. 내 상처는, 모두 머리에 집중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세 번의 뇌를 여는 수술을 하는 바람에 얼굴을 제외한 머리통 3면에는 온통 흉터 투성이다. 그리고 그 흉터들엔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다.  올백이나 똥머리, 양갈래, 포니테일은 할 수도 없다. 헤어스타일은 항상 한정적이다. 미용실을 가는 일조차 스트레스였다. 어딜 가든 항상 머리에 흉터가 왜 이렇게 많냐는 스타일리스트들의 물음에 진절머리가 나, 한번 자를 때 똑 단발로 자르고 3년을 내리 길러 허리까지 기른 뒤, 다시 똑 단발로 자르는 식의 반복된 삶을 살았다. 미용실을 웬만하면 안 가고 싶었던 나의 고안이자 발악이었다. 그러다 시아의 음악을 들었다. 상처가 널 축복해줄 거야. 그 가사를 듣는 순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멋진 말이자 최고의 위로였다. 그래서 내 흉터의 가장 가까운 곳에 남기고 싶었다. 숨기기 급급했던 내 흉터들이 언젠간 자랑스러운 훈장이 되기를. 요샌 탈색머리를 유지하느라 두세 달에 한 번씩은 미용실을 간다. 시대가 많이 변했는지 흉터는 똑같은데 이제 아무도 이에 대해 묻는 샘들이 없다. 누군가 내 머리를 만지는 일자체가 스트레스였는데, 이젠 어느 정도 감내할 수준까지는 됐다. 절대 치유될 수 없는 상처가 있는 반면, 시간이 흐르면서 이렇게 옅어지는 상처도 있기 마련이다. 타투까지 박아 넣은 마당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다.



타투 또한 자진해서 남기는 또 다른 의미의 흉터라 생각한다. 이렇듯 내 타투에는 고뇌와 죽음, 상처에 대한 의미가 많다. 살아오며 남은 여러 가지 흉터가, 다른 의미와 심미를 가지고 내게 또 다른 흔적으로 남았다. 나는 내 타투를 사랑한다. 그저 귀여워서, 유행 따라 멋 부리느라 치장한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내 생각과 철학이 깃들어있다. 나라는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완벽한 것들이다. 

타투를 하며 나는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봤다. 온통 가시밭길이었고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그래도 이건 내 삶이고 내 몫이다. 타투로 인해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을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됐다. 내 인생은 내 것이다. 이 길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나에 대해 재단할 수 없다. *상처뿐인 영광이 아닌 영광뿐인 상처투성이 내 인생에, 그리고 몇십 년 간의 부정 끝에 마침내 그 상처들을 기꺼이 받아들여 타투로 남긴 내게 긍지를 느낀다. 죽음과 고통들이 잔뜩 할퀴고 지나간 풍파 가득한 삶을 타투로 형상화하며, 그럼에도 내 인생을 사랑하게 됐다. 그래서

그럼에도 나는 살아간다.


(*넬 - stars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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