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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안 Nov 18. 2021

수면제가 듣지 않는다

상대방의 숙면을 바라는 게 사랑 아닐까

꽤 되었다. 

어제는 새벽 한 시 반에 먹고 누웠지만, 네시가 되도록 잠이 오지 않아 결국 남자 친구의 토닥임 안에서 겨우 잠들었다. 그리고 아침 아홉 시부터 극심한 두통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오후 세 시에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씻었다. 37도, 미열이 있다.

1년 반 동안 용량을 야금야금 늘리고, 알약 개수도 늘어났다. 그럼에도 잠이 오는 속도는 점점 늦어진다. 지금이야 폰을 멀리하고 책을 가까이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날뛰는 마음을 다스리고 있지만, 폰 중독일 땐 오만 세상사에 과몰입을 하는 바람에 우울하고 고통인 밤이 많았다. 지금은 열두 시부터 자기 전까지는 온전한 인풋의 시간으로 정하고,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드라마를 보든 하나에 집중하며 인물들을 분석한다. 소설 쓰는 일이 또 다른 나의 직업이라, 글이 도무지 써지지 않아 좌절하는 날이면 인풋이라도 하며 '이것도 작업의 일환이야' 라며 긍정 에너지를 충전한다. 몸으로 부딪히며 방법을 찾은 셈이다.

그런데

내 안의 악귀는 내가 좋아지는 꼴을 볼 수 없나 보다. 좋아지는 낌새가 보이면 반작용으로 두 배는 나빠진다. 안간힘을 써서 돌파구를 찾으면 보란 듯 다시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그럼 생채기가 아물 날이 없는 나는 끊임없는 넘어짐과 좌절, 낙담, 그리고 정신승리의 반복이다.


술에 취한 채 약을 먹어도 잠이 오지 않아 (*절대 이러면 안 된다.) 새벽 3시부터 300페이지의 에세이를 앉은자리에서 다 읽은 날도 있었다. 새벽 동이 어느덧 터있다. 늦가을이라 해가 짧아졌는데도, 6시가 지나면 서서히 주변이 밝아진다. 어떤 날은 이틀 치의 양을 한 번에 먹기도 한다. 오남용인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모든 잡생각에게서 벗어나려면 자야만 한다. 그 잠이 비록 악몽으로 향하는 길일지라도.


한동안은 블랙아웃을 겪었다. 자면서 욕을 하며 악을 쓰고, 소리를 그렇게 질렀다고 한다. 그럼 악에 받친 소리에 화들짝 깬 남자 친구는 반쯤 감긴 눈으로 내 등을 쓰다듬어 줬다고 한다. 전부 내 기억에는 없는 나의 행동들. 남에게 듣는 나의 나쁜 버릇은 창피하기 짝이 없다. 약을 도대체 어디까지 늘려야 할까. 아무리 용을 써도 벗어날 수 없는 수면장애.

수면제가 듣지 않는 걸 알고부터 남자 친구는 내가 잠에 들 때까지 등을 쓸어주거나 어깨나 팔, 다리를 주물러준다. 그러면 어느새 잠이 든다. 그것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매일 나를 주물러 주는 그의 손이 뻐근할까 걱정되고 미안하다.





아이유가 어느 방송에 나와 자신의 인사말인 '잘 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는 게 떠올랐다.


상대의 숙면을 바라는 게 사랑 아닐까
내가 잘 자길 바라는 그의 마음씨에서 사랑을 느낀다.




올해 11개월 동안 총 12킬로가 빠졌다. 투병하던 대학생 시절의 몸무게다. 몸의 병만큼 무서운 게 마음의 병이구나 싶다. 아이유의 인사가 '잘 자'라면, 언젠가부터 내 인사는 '건강하세요'가 되었다. 내가 건강하지 않아서 그런지 남의 건강이 특히 염려된다. 건강하지 못한 마음과 정신 때문에 놓친 기회가 너무나도 많아서. 너희도 나처럼 ㅈ되고 싶지 않으면 부디 건강하렴. 이 옘병할 놈의 세상에서.


지난 상담에서 결국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은 사람을 왜 살리세요?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이시지만 한동안 본인께서도 우울증을 겪은 적이 있어 내담자들을 더욱 잘 공감해주시던 선생님은 내 질문에 입을 일자로 꾹, 한번 힘을 주시고는 대답해주셨다.

첫 번째, 자살에 실패하면 엄청 아파요. 그리고 그걸 후회하게 되죠.

두 번째, 죽고 싶은 건 사실 죽고 싶은 게 아니에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거지.


맞는 말이다. 고3 때 영어 학원 선생님은 수능을 앞두고 스트레스가 최고조로 달한 학생들에게 항상 신신당부하셨다. 얘들아, 시험 못 봤다고 죽을 생각하지 마. 절대. 알았지? 옥상에서 떨어지잖아? 떨어질 때 엄청 무서울 걸? 머리 깨지면 엄청 아파. 한강에 뛰어든다고? 물 잔뜩 먹고 몸 퉁퉁 붓는데 괜찮겠어? 손목 긋는다고? 종이에 손가락만 베어도 엄청 아픈데 그으면 얼마나 아프겠냐? 그거 얕게 긋는다고 죽지도 않아 아프기만 엄청 아프고 흉만 지지. 하면서 겁을 주셨다. 덕분에 나쁜 생각 없이 무사히 수능을 마치고 여태 살아있다. 두 선생님의 말이 어쩜 이렇게 관통한다니.


그럼에도 잘 수가 없고, 잠에서 깨면 온통 두통뿐인 생활에 죽음이란 단어는 음습하게 내 몸을 휩싸고 돈다. 내일은 오늘 못 간 상담을 하러 가야 한다. 두통 때문에 못 갔다. 한동안은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면, 내일은 불면증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난 파도가 머물던
모래 위에 적힌 글씨처럼
그대가 멀리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또 그리워 더 그리워
나의 일기장 안에
모든 말을
다 꺼내어 줄 순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띄울게요
음 좋은 꿈 이길 바라요

아이유 '밤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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