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벤처사업가의 도전
스타트업이란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단어는 어떤 것들일까? 혁신, 혁명, 도전, 고속성장, 로켓 등의 단어와 함께 자주 쓰이는 단어는 '배고픔'이다.
스타트업은 배고프다.
스타트업은 대부분 정말 배가 고프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스타트업들은 대다수가 '헝그리'하다. 아이템 개발단계에 있는 곳은 말할 것도 없고 초기 투자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급여를 받으며 일을 한다. 이들 스타트업들의 대부분은 학생 또는 최소한의 정부지원금을 받은 기업들이 다수이기에 헝그리 할 수밖에 없다. 나 또한 몇 년 전 시작했던 첫 사업은 동료들과 쌈짓돈 100만 원씩을 털어서 시작했으며 월급도 한 푼도 받지 않고 일을 했었다.
스타트업의 헝그리함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
그렇게 시작했던 첫 사업. 초기 멤버 5명은 100만 원씩 모은 돈을 홈페이지를 만드는데 다 써버렸고 사무실에 들어갈 돈도 없어 방학기간 학생들이 없던 학교 동아리방의 한편을 빌려서 일을 했다. 초기 멤버들은 각자의 컴퓨터로 일을 했기에 홈페이지 외주비용을 제외한 회사의 비용은 '제로'에 가까웠다. 당시에는 제품을 만드는 단계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구조는 없다고 생각했다. 비용 부담이 없으니 걱정도 별로 없었고 마음 편하게 사업을 할 수 있었다. 그때는 '헝그리'한 구조에 숨어있는 문제들을 예측하지 못했다.
배고픔이 부른 첫 번째 문제.
몰입 저하
그렇게 월급이 없이 2~3개월이 지나자 창업 멤버 개인의 재무상태에 비상등이 울리기 시작했다. 월급이 제로인 상황은 회사 입장에서는 좋았으나 사실은 그 부담을 개인들이 안고 가고 있었던 것이다. 동료들은 식대, 통신비도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했다. 몇몇 동료들의 입에서 불평이 나오시 시작했다. 갈등이 생겼다. 그리고 개인적인 재무 문재들이 생기며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빠르게 매출을 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겼다. '배수의 진'을 치면 간절함과 집중력이 높아질 것이라 생각했으나 헝그리함은 오히려 우리의 몰입도를 떨어뜨렸다.
배고픔이 부른 두 번째 문제.
조급함
무급으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지자 우리는 최소 생활비를 위해 20만 원의 월급을 받기로 했다. 그 결정으로 일단 급한불은 꺼졌으나 오히려 빨리 매출을 내서 월급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족한 급여는 우리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매출을 내기 위해 주 7일 하루 12시간씩 일을 하며 이를 악물고 뛰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켰다. 매출에 대한 조급함으로 우리는 어느 순간 우리의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주겠다는 생각보다도 눈 앞의 매출에 더욱 집착하게 되었다. 끈질기게 고객 서비스 개선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럴 자금도 없었다. 우선 살아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급함 속에서 생존을 위한 매출을 만들기 위해 긴 시간 허덕이다 결국 성장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배고픔이 부른 세 번째 문제.
전문성 저하
사업 초기 우리가 속한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며 운이 좋게도 우리의 매출도 빠르게 올라갔다. 인력을 뽑아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다만 매출만큼 비용도 커진 상황이었던지라 금전적 여유가 없었다. 우리는 채용에 있어서도 적은 연봉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적게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우리도 적게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를 주장하며 직원들에게 저급여로도 열심히 일해줄 것을 요구했다. 당연스레 지원자는 적었다. 좋은 커리어의 경력직보다는 대부분 신입들이 지원을 했고 그들을 뽑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조직의 틀을 만들 수 있는 경력자를 영입해야 되는 상황이었으나 우리의 헝그리 한 구조에 함께하고 싶어 하는 경력자는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충원된 인력들은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며 어떻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나 또한 그것을 몰랐다.) 그들은 틀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었으며 배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경쟁자들은 그들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고 빠르게 치고 나갔다. 인력이 충원되었으나 조직의 속도는 더 느려졌고 문제는 더 많아졌다.
좌절. 그리고 다시 시작한 창업.
첫 번째 창업은 그렇게 많은 문제들을 극복해내지 못하고 하향세를 겪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성과를 좋게 여겨주는 회사들이 몇몇 있어 회사를 매각할 수 있었다. 외부에서는 23억 매출에 매각까지 했으니 그래도 괜챃은 것 아니냐며 위로했지만, 오랫동안 큰 사업가가 될 수 있다고 강력히 믿고 준비해온 나에게 첫 번째 사업은 한계를 확인하게 된 계기였으며 그렇기에 괴로웠고 좌절했던 시간이었다. 당시 나는 스트레스로 인해 식도염, 위염, 간염 등 온갖 병들로 고생했다. 그 후 회사 매각 이후의 회사생활은 오히려 천국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2년 가까이의 직장생활 이후 창업의 고통이 희미해질 때쯤 나는 다시 나와 창업을 했다. 그리고 그때 시작했던 사업체를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속해오고 있다.
'헝그리'를 버리자 찾아오는 인재들.
두 번째 창업을 할 때 내가 세운 첫 번째 원칙은 "절대 직원들을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첫 번째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고객에 집중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직원의 몰입'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고 경영자인 내 역할은 직원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나는 초기 출자금을 높였고, 초기 투자가 결정된 이후 창업을 시작했다.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초기 투자자들을 만났다. 개인적으로는 직장이 있어 두려울 게 없을 때 투자자를 만나니 더욱 자신감 있게 말을 할 수 있었다.)
창업 단계에서부터 현금을 확보하고 급여 수준을 높여 놓으니 보다 수월하게 인재들을 뽑을 수 있었다. 전 직장에서 함께 일을 하던 동료들도 구조를 만들어 놓고 설득을 하나 둘 합류를 했고 이후에도 좋은 인재들이 많이 들어왔다. 운영상에서도 이점이 많았다. '자본'이라는 체력의 뒷받침 덕에 우리는 단기 매출과 장기적 발전 사이의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었으며, 이는 안정적인 성장을 가능케 했다. 그렇게 우리는 3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성장을 하고 있으며 회사는 더욱 탄탄해지고 있다.
창업자가 배고픈 것은 때때로 좋으나
직원이 배고픈 것은 좋을 게 없다.
물론 회사의 성공과 실패가 단지 '헝그리' 한 조직 구조로 결정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위의 사례는 단지 내가 겪은 개인적인 사례일 뿐이다.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창업은 구조적으로 배가 고플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다만 걱정하는 것이 하나 있다. 때때로 스타트업 대표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몇몇 경영자들이 직원들에게까지 '배고픔'을 강요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그 회사가 심히 걱정된다. 직원에게 배고픔을 강요하는 상황이 되면 직원은 일에 몰입하지 못하게 되고 이는 회사의 위기로 이어진다. 배고픔을 당연시하는 문화에 좋은 인재는 없으며 좋은 인재가 없는 회사에 성장은 없다. 회사에 조금이라도 돈이 있다면 제일 먼저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사람'에 투자한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을 뽑는 것에 투자하는 것이 아닌 '더 좋은 사람'에게 '더 많이 주는 것'에 투자하는 것이다. 지금은 나는 인재들을 끌어올 때 그들이 원하는 것을 꼭 묻는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면 최선을 다해 그들이 원하는 것에 플러스알파를 더 주려고 한다. 원하는 것 이상의 것을 받게 될 때 사람들은 즐거움과 감사함을 느끼고 일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돈이 없었을 때는 기대 이상의 스톡옵션을 제공했다.) 나는 이것이 직원과 경영자가 서로 이길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믿는다.
스타트업의 배고픔은 때로는 긍정적인 효과를 내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함께한다. 경영자는 이 양면을 신중하게 고려해야만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