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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준상 Dec 04. 2018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북리뷰 - 에세이

#세살버릇여름까지간다 #이기호


1. 딱히 주제가 없는 생활 밀착형 에세이는 쓰는 사람도 쉽게 쓰고 읽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각잡고 쓰는 글에서는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듯 자신을 숨기고 쓰게 되지만, 가벼운 에세이는 쉽게 쓰다보니 정제되지 않은 작가의 가치관 또한 쉽게 드러나게 된다. 그게 그런 글의 매력이기도 한데, 그렇게 드러난 가치관이 독자의 가치관과 비슷할 경우에는 공감을 얻는 글이 되겠지만, 결을 달리할 경우 읽는 입장에서 불쾌한 감정이 들 수도 있다. 대다수의 사람의 생각과 다른 경우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욕 먹기 딱 좋다.


2.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의 글이 그렇다. 보통 그 분이 쓰시는 글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을 가지고 이것저것 일상의 주제나 관련된 감상들을 끌어다가 쓰는 무겁지 않은 글인데, 가볍게 쓰다보니 자신이 평소 세상을 보는 관점이나 태도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헌데 그 분의 글은 대체로 일반 대중을 교화시켜야 할 대상이나 뭘 모르고 사는 사람들로 보는 것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보니 네티즌님들에게 요새 한창 비난의 대상이 되고 계시다.


3.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나는 그게 그렇게 욕먹을 만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비판을 하는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도 존중해야하지 않냐고 한다면 크게 할 말은 없긴 하다. 민주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이 공감하지 않는 작가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마련인데, 굳이 댓글 한 줄 더 쓰고 그 사람을 비난해가면서 불쾌함을 표시하는 게 맞는 일인가. 오히려 그게 그 비난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경제적으로 이롭게 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말은 아니다. 비판이든 비난이든 할 수 있다. 나는 그냥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소비하는 방식이 좀 안타깝다. 내 생각엔 아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넘겨도 될 일인데. 아마 우리가 남들 의견을 지나치게 신경쓰고, 비슷한 생각이면 한마디 거들고 하는 경향이 있다보니 더 심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대중문화에 발 걸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인터넷 댓글을 무서워하고 말을 가려서하고 논란이 되면 댓글테러 당하고 나서 자필 반성문 써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좋은 작가가 있으면 나쁜 작가도 있게 마련인데, 사회적으로 좋은 쪽을 써도 될 에너지를 나쁜 쪽으로 쓰게 되는 것 같아서 좀 안타깝다.


4. 얘기가 샜는데, 이 책은 40대 세 아이의 아버지인 작가가 일상 생활에서 있었던 소소한 일들을 재료 삼아 쓴 에세이다. 이 책 또한 내 기준에서 읽으면서 공감 가는 부분도, 좀 별로다 싶은 부분도 있었다. 무거운 내용은 없고 가벼운 이야기들만 있어서 쉽게 금방 읽었고, 금방 덮었다. 원래 에세이가 그런 거지.


5. 경제적으로 넉넉치 않은 문학가의 가정생활 이야기다보니, 소위 짠내 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런 부분은 공감도 되고, 또 그 와중에 가족에 대한 작가의 사랑도 느껴지고 해서 좋았다. 불편한 부분도 있었는데, 우리나라 아버지들이 으레 그렇듯이 자존심 세고 가부장적인 면이 있으면서도 약간은 찌질한 철없는 면도 있어서, 일화들을 읽다 보니 좀 답답하고 내가 부인 입장이었으면 화났을 법한 이야기도 있었다. 생전 요리도 안하다 호기롭게 요리한다고 하다가 망치기도 하고, 셋째 아이를 출산하는데 소설 쓰느라 병원에 같이 있지도 못하고 하는 부분은 내가 부인이 된 것처럼 답답하기도 했다. 그런데 또 그런 면이 우리 아버지들이 그렇듯이 가족에 대한 사랑이 바탕에 짙게 깔려있는 것이어서, 나름 페이소스라고 생각하면서 봤다.


6. 사실 내가 미혼이어서 그런 건지 큰 감흥을 느끼면서 보지는 못했지만, 가정에서 있던 소소한 일들에서 작가가 겪은 감동이나 행복함이 잔잔하게 전해져서, 술술 잘 읽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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