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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정민 Mar 29. 2021

믹서기 사건의 전말

나를 키우는 육아 #1


매주 화요일은 10시부터 5시까지 코칭 수업을 듣는 날이다.

수업 듣는 중에 잠깐 나가 하원 하는 작은 아이를 데리고 헐레벌떡 들어왔다.

친구네 집에 가고 싶다는 아이를 달래가면서.


집에 들어오니 큰아이가 바나나 주스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웬만하면 난장판이 되던 어찌 되던 알아서 해보게 두는 나지만 

이번에는 곁에서 지켜봐 주어야겠다 싶었다.

새로 장만한 유리 믹서기 무게가 만만치 않은 데다

날카로운 칼날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마무리될 때까지 곁에 있다 얼른 수업을 들으러 가야지 생각하며 

나는 그 짬에 아침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작은 아이의 울음이 터진 것은.


얼른 고개를 돌려보니 믹서기에 담겨 있어야 할 바나나와 우유가 아래로 다 흘러나와 있었다.

믹서기 아래를 막고 있어야 할 칼날이 장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큰아이가 재료를 담은 거였다.


아끼는 우유를 못 먹게 된 것이 속상해서 작은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고

큰아이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일을 저질러 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과 당황스러움, 

생각대로 되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과 화가 뒤섞긴 표정. 

부정으로 뒤섞인 딸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이 못내 불편했다.


 모습에 욱하고 올라오려는 화를 애써 진정시키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우유가 아직 남아 있고, 또다시 만들 재료가 있는 것도. 

우리 얼른 치우고 다시 해 보자."


아이들의 마음에 공감해 주는 동시에 

얼른 정리하고 수업 들어가려고 했던 계획이 틀어져 실망하고 짜증이 난 내 마음도 달래 가며 

식탁 위로 쏟아진 우유를 행주로 닦아내었다.


혼자 수업 들을 때와 아이 하나만 있을 때

그리고 아이 둘과 함께 하며 무언가를 해야 할 때 

완전히 달라지지는 상황과 내 마음을 생각하며

엄마의 자리가 주는 무게를 다시 한번 절감하기도 했다. 


그 순간 큰아이의 입에서 한 마디가 터져 나왔다.


"엄마는!!"


겨우 마음을 추스르며 정리하고 있는 중에

큰아이의 입에서 나온 원망 섞인 말은

애써 가라앉힌 내 감정에 불을 지피고 말았다. 


나는 감정을 실어 아이에게 쏘아붙였다.


"밑에 안 막혀있는지 몰랐어? 재료를 넣으면서 밑에 막혀있는지도 안 보고 넣으면 어떻게 해?

그래 놓고 엄마 탓을 하니 엄마도 속상하잖아. 그래도 엄마는 잘 추스르고 정리하려고 하고 있는데 네가 잘못한 걸 가지고 왜 내 탓을 해?"


아이에게 한마디 던져놓고는 쏟아진 재료 정리를 마무리하고

다시 주스를 만들도록 재료를 준비하는데

한편에서 조용히 있던 아이가 말을 건넸다.


"엄마.. 죄송해요. 저는 엄마가 밑에를 막았는 줄 알고 재료를 넣었는데 엄마가 저한테 뭐라고 그래서 속상해서 그랬어요."


순간 분주하게 움직이던 손이 멈짓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내가 아이에게 믹서기를 건넸다는 말인가? 밑을 막지 않고?'


돌이켜보니 믹서기를 꺼내어 아이에게 재료를 담으라고 식탁 위에 올려놓은 것은 나였다. 

아이들 챙기고 동시에 설거지까지 하고 돌아갈 수업을 생각하며 분주한 마음에 

밑 빠진 독인지도 모른 채 그냥 올려두었던 것이었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무얼 하나 하면서 그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다음을 생각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를, 엄마의 자리를 다시 생각했다. 


아이는 엄마가 올려놓은 믹서기에 당연히 아랫부분이 장착되어 있을 줄 알고 재료를 넣었던 거였다.

재료를 혼자 준비해서 막 주스를 만들려던 찰나 다 쏟아져 버린 것도 속상했을 텐데

그 탓을 자기에게 돌리니 아이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럼에도 내 마음을 헤아리고 죄송하다 말하는 아이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아이에게 말했다.


"그랬구나. 미안... 엄마는 정신없이 하면서 네가 믹서기를 가져다 놓았다고 생각했네.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엄마가 뭐라 해서 정말 속상했겠다. 미안해...."


우리는 서로를 꼭 껴안고 화해의 마음을 나누었다.

가끔은,

아니 그보다 더 자주.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를 키우며 내가 자란다고 느낀다.

아이를 통해 나를 키우는 게 육아(育我)인가 싶다.  


엄마의 마음을 단단하고 평온하게 세우기 위한 14일의 코칭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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