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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정민 Feb 07. 2024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장면이었습니다.

나의 첫 명상 수행기 - 위빳사나에서의 열


* 담마 코리아에서 진행하는 열흘간의 위빳사나 코스 수행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 시간 순서와 관계없이 그 시간 동안의 깨달음, 가르침 등을 글로 남깁니다.

* 작성 순서대로 보시려면 '위빳사나 명상 수행기' 카테고리에서 맨 아래 글부터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열흘, 정확히는 11박 12일간 진행된 위빳사나 수행을 시작하기 전 

핸드폰을 비롯한 모든 전자기기는 반납하고 코스에 참가합니다.


첫날 OT가 끝나고 식당에 붙어 있는 일과표를 보고는 

사진을 찍기 위해 주머니로 손을 가져가다

'아차' 하고는 멈추었습니다. 


맛있는 식단을 보고,  센터를 거닐며, 사진을 찍어야지 생각하다

핸드폰이 없음을 깨닫고 멈춘 순간이 몇 번이나 되었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경험하며 

일상에서 핸드폰으로 멈춰지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알아차렸습니다. 


맑은 정신으로 기억하고 떠올리면 될 일들도 

핸드폰 알람에 의지해 

요란하게 울리는 소리로 인해

수시로 지금이 깨어지던 나날들을 보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들을 

나의 의식이 아닌 기계에 의존하며 지냈다는 것을

수시로 핸드폰을 찾으려는 손이 갈 곳을 잃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쯤 지나자 

나를 대신해 기억해 줄 핸드폰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핸드폰 찾는 일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있으면 

온전히 의식을 몰입하고 찬찬히 마음에 담았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 남편과 둘이 여행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스쿠버 다이빙을 하기 위해 배를 타고 나가다 

선생님께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여행 며칠 차이던 그때까지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고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멋진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그 순간을 오롯이 느끼고 누리면 될 것을,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느라 부산을 떨고

마음으로 오롯이 누릴 수 있는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대어 

지금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저보다는 남편의 의지가 더 많이 작용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없었을 시절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면 별도의 카메라가 필요했었죠.


스마트폰이 생기고 언제라도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들과도 쉽게 연락을 취하고 수많은 정보들과 연결되면서 

일상에서 지금에 온전히 머무르는 시간들보다 

불쑥불쑥 치고 들어오는 각종 알림에

무료함을 달래려 습관적으로 핸드폰으로 향하는 손길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지요?






때때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것이 온전히 내 안에 남아 있는 기억인지

사진 속의 장면을 내 기억으로 착각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새벽 4시 30분부터 저녁 9시경까지

잠깐잠깐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 종일 명상을 하다 보면

온갖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그때 떠오른 시간들은 사진이 아닌 

온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던 기억들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오롯이 그 순간에 있던 때....



평소 떠올리지 않았던 시간들도

차곡차곡 내 안에 저장되어 있었다는 것을

켜켜이 쌓인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인생에서 기억으로 담아 둘 따스한 순간들을

몸으로 마음으로 온전히 기억할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아주 오래전

친하게 지내던 직장 동생과 퇴근길 벤치에 앉아 나누던 순간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어둠이 내려앉은 길

나무에서 떨어지던 낙엽들을 함께 바라보며

'우리 이 가을을 오래 기억하자' 했던 그날을.......






크리스마스이브날 새벽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숙소에서 식당까지 가는 길을 빗자루로 쓸다 잠시 멈추고는

소리 없이 천천히 내리는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사철나무와 억새풀을 비추는 따스한 조명 아래로

조용히 하늘에서 눈이 떨어지는 풍경


사진으로 찍지 않았지만

그 풍경은 오래오래 마음에 남아 있을 장면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며

따스하게 기억될 오늘 보내시기를.


여러분의 오늘이

평안하기를

조화롭기를

행복하기를



* 코스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수많은 알람을 삭제한 것이었습니다. 새벽 기상 알람부터 아이들 학원 시간에 맞춘 알람들, 회사 업무와 관련해 날짜를 맞춰둔 알람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지워버렸습니다.



매 순간 깨어있도록 노력하며 신기하게도 해야 할 일들이 때가 되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생각이 떠올랐을 때 그 순간에 집중해 바로 실행하며 일이 밀리는 일도 알람에 의존해 기억해야 할 일들도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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