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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정민 Oct 26. 2020

왜 아이를 안 낳는지는 어머님 아들에게 물어보세요!!

엄마가 되어가는 시간 #1.


아이를 낳고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밤낮으로 우는 아이 때문에 잠 못 자고 밥도 제때 챙겨 먹기 힘들었던 시간.

오롯이 내 책임으로 다가온 어린 생명에 대한 부담감으로 밥 먹다가도 눈물이 뚝뚝 흐르던 날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앞으로 내 삶은 어떻게 될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아 하루하루 버티듯 지내왔던 시간들이 어느덧 기억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다.

물론 육아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지만 아이를 안고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던 날들은 이제 나름의 단단함으로 채워져 가고 있다.


지난 8년의 시간 동안 아이의 나이가 먹은 만큼 나도 엄마라는 이름의 나이를 먹으며 그렇게 조금씩 엄마가 되어 왔다.

그 시간을 겪으며 깨달았다. 엄마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낯선 육아의 길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며 걸어온 길을 지나

이제는 제법 가야 할 길을 알고 딛는 걸음 속에

같은 두려움으로 힘든 시간을 겪고 있을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며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엄마가 되어 온 지난 시간들을 글로 기록해 보고자 한다.



"어머니가 나한테 한 번만 더 애 왜 안 낳느냐고 물어보시면
다 말씀드릴 테니 그렇게 알아!"

결혼 5년 차. 딸 넷에 귀하게 얻은 막내아들한테서 결혼하고 5년이 지나도록 손주 소식이 없자 어머님은 나에게 몇 차례 아이에 대해 물으셨다.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어머니 입장에서는 많이 이해하고 기다려주셨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어오셨다는 것을 안다.

친손주가 보고 싶을 그 마음이 이해도 되었다.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며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는 중에 중국 유학과 워킹홀리데이 등으로 늦어진 졸업으로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남편에게 지금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아 날을 잡은 건 나였다.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래를 함께하자는 말을 입에 올리기가 미안했을 터였다.


결혼식부터 시작해 양가의 도움 1도 받지 않고 마이너스 통장을 이용해 신혼집을 마련한 것을 모를 리 없는 시부모님도 처음 몇 년간은 자리 잡느라 그렇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시는 듯했다. 간간이 아이 낳을 생각은 없는지 물어오기는 하셨는데 그때마다 "그러게요, 아직 OO 씨가 아이 가질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나 봐요." 하고 웃어넘겼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일에 대해, 누군가의 삶을 책임진다는 일에 대해 남편은 극도의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삶도 이제 막 한 발을 떼는 중이었으니까. 결혼하면 아이 낳고 기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나름 현모양처의 꿈을 가지고 있던 나였지만 남편의 마음에 서운함을 느끼거나 남편을 종용하는 일은 없었다.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한 것이 아니고 이 남자가 좋아서 함께 살려고 결혼한 거였으니까. 함께 사는 이상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나 혼자 결정할 일은 아니니까. 그의 뜻을 존중하고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무엇보다 그냥 그대로 우리끼리 지내는 삶도 즐거웠다. 남편은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아꼈고 그 우선순위를 절대 놓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알콩달콩 보낸 신혼의 시기가 지나고 결혼 4년 차쯤 되었을 무렵. 남편과 아이 문제로 심하게 다투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이를 완강히 거부하는 남편의 모습에 서운함이 밀려왔다. 몰래 숨어 지내는 것도 아니고 멀쩡하게 결혼해서 살고 있는데 왜 아이를 낳지도 못하는 것인지. 내 처지가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아이는 안 가지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날이 선 것도 그즈음이었다. 왜 당신 아들에게는 묻지도 못하고 애꿎은 며느리만 붙잡고 늘어지시는지.

내가 낳지 말자는 것도 못 가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게요, 어머님. 아이 제가 혼자 낳아 기를 것도 아니고. 궁금하시면 OO 씨한테 물어보세요."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남편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낱낱이 전하려다 그 정도로 마무리하고 시댁을 나와 남편에게 쏘아붙였다. 다시 한번 이런 말 듣게 하면 나도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않겠으니 알아서 하라고.

며칠이 지나 남편은 자기가 정리했으니 이제 신경 안 써도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건넸다.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시부모님께 자신에게 문제가 있어 아이를 갖지 못한다고 전했다는 사실을.


하나뿐인 아들로부터 손주를 보지 못한다는 절망과 걱정에 휩싸일 시부모님의 마음에 못을 박고 남자의 자존심이라 할만한 생식기능의 문제를 거짓으로 지어낼 정도로 그렇게 아이가 갖기 싫은가?


그것은 나에게 또 다른 상처로 다가왔다.


경험의 지혜
세월이 지나고 보니 아이 낳기 전 부부가 온전히 보내는 둘만의 시간은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과 부딪히고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단단하게 쌓아온 시간 덕분에 출산 후 여러 위기도 잘 넘길 수 있었다.

종종 출산에 대한 견해가 달라한 쪽이 상처 받거나 또는 억지로 요구해서 아이를 낳는 경우가 있는데 때로 출산 후에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잘 지내던 부부도 출산 후에 위기를 겪는 것을 생각하면 서로 뜻을 맞추어 아이를 낳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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