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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통 Apr 23. 2016

심야의 노크

요란한 이웃과 산다는 것


 나는 잠을 잘 자는 편이다. 심지어는 퇴근길 버스를 타고 있는 10분 동안에도 꿈까지 꾸며 잠을 자곤 한다. 잠을 설치는 일은 웬만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 모르고 잔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온 후로는 자다가 깨는 일이 많아졌다.

 

"여보게 문 좀 열어보게! 여보게 문 좀 열어!!"

쿵쿵 쿵쿵.

다행히 내가 그 '여보게'는 아니다. 앞집 할아버지가 드디어 아랫집 아저씨가 집에 있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이번에도 월세가 밀렸나 보다. 앞집 할아버지는 열심히 문을 쿵쿵 두드린다. 아랫집 아저씨도 만만치 않다. 웬만해선 문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엔 어지간히 월세가 밀렸는지 할아버지도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억울한 목소리로 원망을 하며 문을 여는 아랫집 아저씨. 그 다음부터는 음소거라도 누르고 싶다. 서로 언성이 높아지고, 변명하는 아저씨 사정이 딱하다. 물론 월세 받느라 고생하는 할아버지도 딱하다. 그런데 내일 아침 6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하는데 새벽 3시에 잠이 깬 나도 조금은 딱하다. 결국 경찰이 출동했다. 누군가가 신고를 했나 보다.


"야! 문 열어! 너 미쳤어? 문 열어 문! 난 어떡하라고?"

쿵쿵 쿵쿵

이번에도 그 '너'는 내가 아니다. 이건 옆집 언니의 굉장한 연애 때문이다. 그렇게 새벽마다 문 두 드리며 우는 남자들이 많다.(목소리가 다 다르다.) 그 언니도 웬만해선 문을 열지 않지만 진짜 진짜 열 받으면 대차게 문을 열고 나와서 그렇게 쌍욕을 한다. 어쩔 땐 듣고 있는 내가 다 위태위태 하다. 진짜 냉정하다. 듣고 있으면 그 낭만파 남자들이 딱하다. 싫다는데 새벽에 집까지 찾아와 막무가내인 남자를 상대하는 언니도 딱하다. 이번에도 결국 경찰 아저씨가 왔다. 이번에는, 언니가 남자를 감싼다.

"아니 왜 그러세요? 이 사람 나쁜 사람 아니에요. 그냥 좀 싸우는 거예요."

아깐 그 남자 죽여버린다더니.

언니 목소리가 조금 떨린다.


쿵쿵하고 맨손으로 문을 두드리는 절박함은 그 동네 잠보도 깨운다. 그 잠보는 지겨워서 귀를 틀어막고 심란해한다.

우리는 다닥다닥 붙어산다. 앞집과 우리 집은 네 발자국도 떨어져 있지 않다. 창문을 열어두는 오뉴월에는 앞집 밥상에 수저 놓는 소리까지 들린다. 옆집 언니가 친구들이랑 어느 기집애 흉보는 소리도 다 들린다.

 아무렇지 않았던 낮이 가고 밤이 깊어지면 우리는 나란히 각자의 방에 누워 잠을 청한다. 그러다 맨손이 쿵쿵 쿵쿵 우리의 문을 두드리면 그 소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연다.

 그런 밤이면 낮에는 몰랐던 것을 깨닫는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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