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졌던 최초의 꿈은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아이가 되는 것이었다. 이런 기특하고 서글픈 꿈을 가졌기에,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했고, 명문대에 입학했다. 명문대 입학과 동시에 '공부 잘하는 딸'이라는 부모님의 자랑도 끝이 났다. 그 이후 명문대 생활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재미 없었다. 스무살의 나는 비로소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를 기쁘게 하는 직업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찾은 꿈이 상담심리사. 사람들은 ‘내가 왜 네 앞에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하면서도 내 앞에서 속마음을 털어놓곤 했다. 나도 왜 그들이 내 앞에서 그들의 깊은 마음을 꺼내 놓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얘기를 마친 그들의 가벼워진 표정과 그들이 표하는 감사한 마음이 내게 기쁨을 주었다. 이게 바로 천직이 아닐까. 그런 순진한 생각을 하며, 나는 상담심리사가 되어 사람들을 치유하는 삶을 꿈꾸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나는 변호사가 되었다.
심리학과를 가겠다며 대학입시를 다시 준비하던 중, 아버지의 사업은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급속도로 기울었다. 비교적 부유하게 살아온 내게, 경제적 궁핍은 매우 낯설고 두려운 것이었다. 박봉의 대명사라는 심리상담사로 살 수 있을까? 아빠 사업이 이대로 무너지면 박봉을 가지고 어떻게 부모님을 부양하지? 자신이 없어졌다. 나의 이런 고민을 들은 학원 선생님이 내게 변호사란 직업을 권해 주셨다. “네가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고 싶은 것이라면, 변호사도 괜찮은 직업이야. 돈도 어느 정도 벌 수 있으니, 부모님을 부양하는 데도 문제가 없을 거다.” 인권변호사로 칭해지는 사람들의 책을 몇 권 읽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대학 서열을 낮춰, 엄청난 장학혜택을 주는 대학의 법대를 가서, 넉넉치 않지만, 적지도 않은 학교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몇 년 후 아버지는 완전히 사업에 실패했다. 회사 건물도, 집도 경매에 넘어갔고, 회사는 문을 닫았다. 나는 감정을 꾸역꾸역 눌러 삼키며 공부에 집중하려 애썼다. 슬픔과 두려움에 압도되어 공부가 되지 않는 날에는 자학하며 감정을 내리눌렀다. 약해질 때면 스스로를 질책하며 화를 냈다. 정신 차리라고, 이렇게 약해 빠지면 안된다고, 넌 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법고시에 합격하였다. 부모님의 간절한 소망을 이뤄드리고, 무너진 자존심을 세워드리고 싶어 판사가 되었고, 몇 년 후 국내 유명 로펌의 변호사가 되었다. 로펌 생활은 고되었지만, 로펌 월급은 많은 것을 해결하여 주었다. 부모님이 살 집을 마련하여 드리고, 수 년간 어깨를 묵직하게 누르고 있던 은행 빚을 상환하였고, 우리가 살 집을 마련하였다.
그렇게 숨가쁘게 달려오다 보니, 39살이 되었다. 나는 국내 저명한 로펌의 자리 잡은 변호사가 되었고, 더 이상 빚에 허덕이지 않았으며, 돈 때문에 눈물짓는 일이 없어졌다. 안절부절 종종거리며 키우던 아이도 잘 성장하여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다.
모든 것이 안정적이라고 느껴지던 그 즈음, 갑자기 내면의 질문이 밀려들었다.
‘나는 계속 이렇게 살아도 좋은 걸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나는 10년 후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길 원하지? 내가 정말 바라는 삶은 어떤 삶이지? 그 동안 부모님을 부양하고, 아이를 키우기 위하여 쉴새 없이 달려왔는데, 마흔 이후의 삶은 나를 위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나를 위해서 산다는 게 도대체 뭐지? 부모님을 부양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내 기쁨이긴 했지만, 가족을 빼고 생각한다면, 나는 뭘 하고 싶은 거지? 버킷리스트라도 작성해야 할까? 근데 버킷리스트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나는 죽을 때 무엇을 후회하게 될까? 그것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나는 어떤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한번 시작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매일같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 그러나 그 어는 것 하나 쉽게 답변할 수 없었다.
내년이면 마흔인데 이렇게 나에 대해 아는 게 없나? 갑자기 공허함이 몰려왔다. 내가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정신 없이 꾸역꾸역 성공가도를 달려오던 나는, 인생의 중반쯤에 서서 갑자기 길을 잃었다. 인생의 중반 이후 길을 찾아야했다. 하지만 길을 찾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떤 변화를 주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매일 나를 엄습하는 이 질문들에 대하여 나는 당당히 답할 수 있는걸까?
그렇게 수많은 질문들과 함께 마흔앓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