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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귤 Jan 12. 2020

타노스도 우리 민족이었어

자원 고갈과 끝없는 소비에 대하여

우주 최강의 존재 타노스. 마블 시리즈에서는 제거해야  악당으로만 비춰진 그는 나에겐 누구보다 매력적인 환경히어로이다. 자원고갈의 결과(이대로 가면 우린  망한다) 현실적으로 예측하고 이에 대한 혁신적인 솔루션(우주 인구의 절반을 날리자) 내놓은 전무후무한 인물인 것이다. 게다가 재로 사라질 절반은 랜덤으로 정하고, 살아남은 절반은 감사하자는 사상,  얼마나 공평하고도 긍정적인 방식으로 공익에 봉사하는 자세인가.


타노스의 제안은 혁신적이었지만 최초는 아니었다. 18세기의 영국 경제학자 토마스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또한 자원 고갈을 이유로 타노스보다 수백  앞서 인구 억제를 주창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에겐 인피니티 스톤즈가 없었지). 산업혁명이라는 변화 속에서, 폭발적인 인구증가와 이로 인한 식량자원 부족이 빈곤, 범죄, 전쟁 등의 문제를 빠르게 심화시킬 것이라는  그의 예측이었다.


다행히 식량부족에 대한 맬서스의 우려는 기우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기술 발전 덕에 먹을 음식은 충분하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  신생국의 급속한 인구증가와 너나   없이 질주하는 자원 소비 현황을 보자면, 이제  이상 지구는 품위 있고 깨끗하게 식사를   있는 환경은 아닌 듯하다. 미세먼지를 마시면서, 또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환경호르몬에 둘러싸여 시름시름 앓으며 먹는 것에서 생존 이상의 의미를 찾을  있을까? 여러모로 타노스와 맬서스의 선견지명이 빛나 보인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자원소비의 속도를 지구인들이 추월한다는 것은, 그리고 그중에서도 한국이 월등하다는 것은 연구로도 나타난다. 지구와 각국의 자원소비 현황을 진단하는 GFN(Global Footprint Network)는 우리가 2019년 한 해 동안 썼어야 할 자원을 7월 29일에 모두 소비한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모든 지구인이 한국과 같은 자원소비 행태를 보인다면 4월 10일에 1년 치 자원을 이미 다 쓴 꼴이 된다. 우리나라는 타노스에게 후려맞아도 할 말이 없는 자원낭비국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구 절반을 날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일까? 타노스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난 제안한다, 우리가 0.5인분의 자원만 사용해보자고. 소비는 확실한 행복이라지만, 불확실할지라도 소비 외의 곳에서 행복을 찾는 노력을 해보자는 것이다.


아마 어려울 것이다. 어디에서 자원을 절약해야 할지 감도 안 올 것이고, 종국에는 왜 타노스가 인구 절반을 날리기로 결정했는지 겸허히 이해하게 되겠지. 하지만 그래도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변해왔으니까, 2020년 새해 0.5인분으로 살아보기를 결심하는 것은 어떨까. (스트레스성 소비나 '쓸모없는 선물하기' 이벤트 정도만 없애도 큰 한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은 어떤 가치보다도 앞서야 한다. 환경도 다 같이 건강하게 행복하자고 지키는 건데 50%의 확률로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는 건 합리화될 수 없다. 광역 어그로를 시전하기 위한 자극적인 서문은 양해를 구하지만, 타노스만큼의 위기의식과 해결 의지를 가지지 않고서는 파괴를 향해 질주하는 우리의 행성을 구할 길이 없다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우리 모두가 사라지지 않으려면, 절반만큼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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