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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아뜨리 조 Mar 30. 2016

소금사막의 밤 9

양평의 겨울

양평의 겨울은 도시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잣나무 숲은 대형 트리처럼 반짝거렸고, 살얼음이 낀 강물 위론 지난가을의 추억을 가득 담은 나뭇잎들이 떠내려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다.

 수지는 전학을 한 이후 많이 밝아졌다고 친정 부모님이 말해 주었다. 숲 사이의 바람소리, 낮게 흐르는 강물 소리가 치유해 준 것일까. 수지는 나와 밥도 먹어 주었다. 나는 주말마다 양평으로 내려가 숲 사잇길과 강가를 산책하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부모님이 살고 있는 동네는 온 통 잣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시골이었는데 최근에는 주변에 펜션과 로스팅 카페들이 군데군데 들어서 있었다. 수지와 나는 카페에서 조용히 책을 읽기도 했고 커피를 로스팅하는 향기를 하염없이 맡고 있기도 했다.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했지만 수지의 이마엔 몇 개의 여드름이 돋아나기도 했고, 만날 때마다 키가 커지고 있기도 했다. 수학학원과 영어학원을 맴돌다 집으로 돌아오던 도시에서보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흐르지 않는 시간 같았지만 어느덧 수지의 생일이 다가왔다. 곧 중학생이 될 아이에게 어떤 선물이 좋을지 고심했지만 나는 결국 봉제 곰인형을 고르고 말았다.

 "수지야 엄마랑 산책할까?"

 거절할 줄 알았지만 수지는 순순히 따라와 주었다. 한동안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고 수지와 나는 그저 서걱거리는 눈 밟는 소리만 주고받았다.

 
 "아빠가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인 거야?"

 너무나 이른 이혼이었기에 수지는 아빠라는 단어를 써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수지의 아빠는 나와 이혼을 한 후 먼 나라로 떠났고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도 전해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마치 그 사실을 처음 깨달은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글쎄...... 뭐랄까. 이렇게 추운 산길을 걷다가 따뜻한 김이 오르는 통나무집 같은 게 날 기다리는 뭐 그런 기분이랄까."

 "남편이 있는 거랑 비슷한 거구나."

 "결혼도 안 해본 네가 어떻게 알아?"

 "할머니한테 물어봤거든."

 수지와 나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둘 다 촌스럽게 곰돌이 인형이 뭐야."

 "둘 다 라고?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도 곰돌이 인형을 사 온 거야?"

 수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영우 선생님...... 엄마 여기 오긴 전에 다녀가셨거든."

 나는 놀라서 발을 헛디딜 뻔했다.

 " 나한테도 아빠가 있다면 선생님 같은 사람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곤 했었어. 육 학년이 되고 애들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때 선생님 눈을 보면 되게 따뜻했거든."

 수지는 앞서서 성큼성큼 걸어갔고 나는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엄마 우리 단골 카페에 가봐. 거기서 지금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셔."

 그렇게 말하고 수지는 집 방향으로 뛰어갔다.

 그의 책상 위에 있던 하얀 소금사막의 사진이 떠올랐다. 그 사진만큼이나 흰 눈길 위로 늦은 오후의 햇살이 눈가루와 함께 흩뿌려지고 있었다. 언젠가 그곳에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 속으로 우주가 들어오는 날, 표면장력처럼 오래 매달려 있던 내 눈물이 별처럼 쏟아져 내린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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