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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벨 Dec 03. 2022

시어머니를 수신차단했다.

시어머니를 수신차단한 지 몇 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암투병 중인 시아버지가 아프실 때는 슬그머니 수신차단을 푼다. 다친 내 마음을 위로하는 일보다, 닫힌 내 마음을 지키는 일보다 남편의 아버지를 살리는 일이 더 중요하니까.


“아버님 보호자 되시죠?”

시어머니를 수신차단했지만 시아버지의 투병에는 함께 했다. 시아버지의 대학병원 보호자 연락망에는 남편과 내 전화번호가 있다. 처음 대학병원을 찾아간 날 간호사 선생님이 물어보았다. 이후 반년은 시아버지가 병원을 갈 때마다 남편과 동행했다. 여러 이벤트가 많이 발생해서 어떤 날은 일주일 내내 대학병원을 가곤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전화번호는 연락망에 없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시아버지를 모시고 대학병원에 간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아빠는 재발한 방광암을 치료 중인데 간암이 재발했다. 4번째 재발이다. 그리고 또 다른 증상이 나와 얼마 전 신장 조직검사를 했다. 3번째 간암이 재발하고 2번 방광암이 재발하는 동안, 암 제거 수술 외에는 아빠 혼자 대학병원에 다녔다. 4번째 간암을 제외하고 그동안 아빠가 암에 걸렸다는 걸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알고 있다. 그렇게 내가 시어머니의 남편이자 시누이의 아빠인 시아버지를 살리는 동안,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내 아빠를 위해 무엇을 했을까. 심지어 나를 위로한 적도 없다. 단 한 번도.




"네가 우리 아빠를 살렸어."

남편은 종종 말한다. 내가 시아버지를 살렸다고. 대장 내시경을 한 병원에 남편과 같이 가서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바로 외래를 갈 대학병원을 예약해야 했다. 나는 한 대학병원 의사를 콕 집었다. 그리고 바로 예약을 잡았다. 그 의사 선생님은 시아버지 내진을 하고 바로 다른 대학병원의 의사에게 빨리 가라고 소견서를 써 주었다. 한국에서 단 한 명, 그 의사만이 시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소견서를 받은 그 의사 선생님께 수술을 받았다.


“자식이니 해야지.”

큰 일을 겪었으니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나에게 잘해주었을까. 고마워했을까. 초기에는 고마워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분들이 반년을 매번 병원을 다닌 내 마음을 알 리가 없다. 일 년이 넘도록 시아버지를 모시고 응급실에, 이 병원 저 병원에 다니고 구급차를 부르던 남편의 헌신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시어머니를 수신차단한 그날은 어쩌면 시어머니에게는 평소와 같은 날이었을 거다. 시어머니는 평소처럼 대뜸 전화로 따지고 물었다. 어차피 내 반응이나 내 대답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쏟아져야 하고 받아내야 하는 말들이었다. 그런데 수많은 말 중에 남편을, 시어머니의 아들을 부정하는 말들이 터져 나왔다.


“왜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하세요? “

지난 일 년, 남편의 시간은 오롯이 시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우주에 존재했다. 그 와중에 시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리고 함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자식이 고생하니 시어머니도 자식 입장에서 생각하실 줄 알았다. 철저한 나의 착각이었다. 여전히 시어머니는 당신이 제일 힘들고 제일 고생한 사람이었다.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하냐고.


“어머님께 전화가 오면 가슴이 두근거려요.”

시어머니는 당신께서 참고 있으니 그걸 알고 있으라 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시는 분인데 도대체 무엇을 인내하고 계신 걸까. 가슴이 뛰고 숨이 찼다. 남편의 헌신과 마음을 의심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아니, 참아서 안 되는 일이었다.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오면 무섭다고 말했다. 심장이 뛴다고.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니.”

시어머니는 화가 잔뜩 난 채로 울먹거리는 내 목소리를 뒤로 하고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시어머니를 수신차단했다. 부모의 사랑을 생색내시면서 자식의 희생은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된다. 그렇게 시어머니는 아주 쉽게 마지노선을 넘었고 나는 싸움 대신 차단을 택했다.


수신차단의 끝은 모른다. 끝을 예상하고 계획한 일이 아니다. 다만 바짝바짝 메말라가는 존귀함 한 바가지는 챙겨두고 싶었다. 부모가 당신의 자식을 존중하는 일이 시어머니에게는 왜 그렇게 어려울까. 부모든, 자식이든, 그저 사람이면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 될 일. 솔직히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고 괜스레 눈치도 보인다. 그래도… 그래도… 아직은 가슴이 두근거려서 아프다.





+헤어지려고 쓰는 글이 아닙니다. 날 선 평가와 지적은 잠시 내려놓으셔도 괜찮습니다. 비방을 위한 공유는 사양하겠습니다. 아무런 평가 없이 그저 자유로워질 수 있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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