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은 의자를 제대로 집어 넣으라고 했다.
자리에서 막 일어났고 의자가 다른 사람 통행에 불편을 초래할 만큼 나와있지 않았다. 그저 책상과 바짝 붙지 않았을 뿐, 내가 보기에 의자는 제자리에 있었다.
화장실 청소를 도맡아하는 그녀로 인해 나는 직장 내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는다. 화장실 실리콘의 오랜 곰팡이마저 내 탓으로 여길까 처음부터 모든 지적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싶었다. 매번 직장 근처 마트 화장실을 다녀오며 애써 웃어본다. 마트가 가까이있어 다행이라고.
오늘도 가방 속 비닐봉지에 비염으로 휴지가 가득, 다 마신 일회용 플라스틱 커피컵도 있다. 환경을 생각해서면 참 좋겠지만 화장실을 청소하는 그녀가 쓰레기통도 비운다.
쓰레기를 처음부터 가져올 생각은 아니었다. 아무 생각없이 쓰레기를 버리고 다 마신 플라스틱컵을 쓰레기통에 버린 날, 행여나 지나가며 그 쓰레기통을 보고 뭐라고 할까 하루종일 그 쓰레기통을 수십 번 쳐다봤었다. 결국, 퇴근하기 전 내가 버린 쓰레기를 파란 쓰레기통에서 다시 꺼내 내 가방에 담았다.
집에 와서 내 가방에 담긴 쓰레기를 다시 꺼낼 때, 이상하게 친정 부모를 향한 죄스러움이 함께 딸려온다. 나를 귀하게 키운 부모님의 마음을 내가 다 망친 것만 같다. 내가 싹싹하게 화장실 청소와 쓰레기통 비우기를 도맡아하면 달랐을까. 그랬다면 그녀는 화장실을 쓸 때마다 나를 지적했을테고 아마 나는 수시로 화장실 문을 열어 화장실 청결을 확인하는 강박을 가지게 되었을게다.
직장 내 괴롭힘 주동자를 평생 안 보면 좋으련만. 그녀는 나의 시어머니다. 어떤 이유와 선택이었어도 결국 아버님 병환으로 남편과 나는 어머님과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어야 했다. 그렇게 피하려고 노력했는데 결국 여기다.
출근하는 날엔 어김없이 한 가지 이상의 지적이 등에 꽂힌다. 물론 업무 외적으로 라이트 훅! 방심하면 어퍼 컷도 온다. tmi 로 직장에서 나는 시부모님의 지시를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을 한다. 상사가 없다. 남편과 논의할 때도 있지만 우리는 아버님이 하시던 일을 더 세분화하고 전문화해서 철저히 분업했다. 업무적으로 나에게 지시를 내릴 수 없는 시어머니는 업무 외 일로 나를 지적하기로 결심하신 듯 하다.
그렇게 지적의 여왕과 함께 직장 내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솔직히 지적마녀라고 부르고 싶다. 비염으로 코도 꽝 막혔는데 요즘 내 인생도 꽝 막혔다. 내일은 또 어떤 걸로 지적을 할까. 무례함에 대처하는 법이라는 책을 열 번도 더 읽었는데 나는 아직도 멀었다. 코라도 뻥 뚫리면 좋겠다. 코 뻥!
+헤어지려고 쓰는 글이 아닙니다. 날선 평가와 지적은 잠시 내려놓으셔도 괜찮습니다. 비방을 위한 공유는 사양하겠습니다. 아무런 평가 없이 그저 자유로워질 수 있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