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자벨 May 05. 2022

이래서 고학력 며느리를 반대한거야.

"내가 이래서 고학력 며느리를 반대한거야."

결혼한 지 8년, 신혼때 꽤 자주 듣던 레파토리를 오랜만에 들었다.


"나는 초등학교만 나와도 좋으니, 순종적인 며느리를 원했어. 그렇다고 네네 거리라는 건 아니야."

마치 도돌이표 같다. 헤어나오고 싶은데 영원히 갇혀서 계속 같은 곳만 맴도는 그 곳, 시어머니.


"너도 서운한 점이 많겠지만 나는 정말 많이 참고 살아. 꾹꾹 눌러서 쌓아놓는다고."

무엇을 쌓아놓으시는 걸까. 도대체 무엇을 참고 계신걸까. 가슴이 벌렁거린다. 심장 박동이 올라가고 금세 울음이 터질 것 같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빌라, 8년 전 그 집에서 자주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전화를 하신 게 아니었다. 그저 당신이 내뱉고 싶은 말을 쏟아내고 싶었을 뿐. 나는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냥 듣고 전화를 끊은 뒤 울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할 수 없었고 친구에게 카톡을 할 수도 없었다. 기분 전환을 하러 나갈 수도 없었다. 나갔다 다시 올라오는 계단 3층 즈음, 나는 늘 울었다. 꼭 내 인생같아서. 계단을 올라올 때마다 엘리베이터 없는 집을 후회했다.


그때도 시어머니는 고학력의 며느리를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럴거면 초등학교만 나온 며느리가 더 좋다고. 문득 같은 부서 대리가 입사 일주일인 나를 불러내 한 소리가 생각났다.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고학력인 후배가 들어와서 회사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를 걱정하는지 아냐고. 그렇게 대리는 회의실에서 소리를 지르며 나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를 함께 깠다. 대리는 지금도 모를게다. 그 날, 자신의 자격지심도 함께 까 보였다는 걸.




"어머님, 어머님은 참지 않으세요. 전화로도 말씀하시고 불러서도 다 말씀하세요. 어머님 하고 싶은 말씀 다 하고 계세요."

결혼 9년차, 부동산 계약서만 5번을 썼다. 남편은 시어머니를 바꾸진 못했지만, 내가 얼마나 남편을 아끼는지 안다. 남편은 효자지만, 시어머니가 얼마나 나에게 못되게 구는지 안다. 남편의 그 확신이 디딤돌이 되어 흔들하는 가슴을 눌러준걸까. 차오르는 눈물이 멈추고 조금 흔들리는 목소리로 어머님에게 말했다. 펄쩍 뛸 줄 알았던 시어머니가, 조용했다. 그리고 그 말에 시어머니는 대응하지 않았다.


대신, 나에게 서운한 점을 다시 열거했다. 명절이나 어버이날, 생신 며칠 전 전화를 해서 이번에는 어떤 음식을 하고 무엇을 할지 물어보지 않는 점, 가족 여행을 가면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차리지 않는 점, 평소에 전화하지 않는 점, 시누이와 친하게 지내지 않는 점...




어버이날 시부모님 일하시는 곳을 방문하다.




"너도 네 부모에게는 귀한 자식인데, 사랑받고 싶지 않니?"

시어머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모두 내 탓이었다. 적어도 시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했다. 고학력자여서 가족 여행에서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차리지 않은 탓, 많이 배워서 명절 이틀 전 시댁을 가는데 그보다 전에 어떤 음식을 준비할지 여쭈어보지 않은 탓, 신혼 때 매주 시부모님을 모시고 식사를 했는데 시댁에 안부 전화를 하지 않은 탓, 생신때마다 백화점에서 케이크를 예약했지만 생신 며칠 전에 따로 전화를 드리지 않은 탓...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건 모두 다, 내 탓이었다. 


시어머니는 계속 말했다. 부당했다. 그저 늘 듣고만 있던 내가 꿈틀거렸다.





"어머님, 어머님은 제가 세상에서 아는 사람 중에 제일 무뚝뚝한 사람이세요. 저는 어머님이 무서워요. 언제나 무표정으로 딱딱하게 제 인사를 받고 말씀하세요. 저는 늘 상처받아요."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포장해서 시댁에 가면, 시어머니는 늘 나 이런거 별로 안 좋아해라고 말했다. 없는 형편에 워커힐 뷔페를 모시고 간 날도 시어머니는 와보니 별로네 라고 말했다. 시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다녀도 시어머니는 한번도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가면 왜 여기는 쟁반이 없니? 행주는 왜 한 개밖에 없냐며 리조트를 돌아다니며 리조트를, 아니 나를 타박했다.


"야. 이마트가서 커피 우유 사와."

시어머니는 부모님이 물려준 이름으로도, 며느리라는 호칭으로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늘 "야."라고 불렀다. 시어머니가 "야."라고 부를 때마다 아직도 딸기를 씻어 꼭지를 떼주는 엄마가 생각났다. 결혼 9년차, 아직도 시어머니는 나를 야 라고 부르고 늘 명령조로 말한다. 하지만 그런 시어머니의 아들에게 나는 늘 예쁘게 말한다. 귀하게 살라는 엄마의 바람은 지키지 못했으니, 아름답고 품격있게 살라는 엄마와의 약속은 꼭 지키고 싶었다.




"어머님, 명절 전에 미리 전화드려 음식 준비와 안부를 여쭙는 건 저희 집에서는 하지 않았던 일이에요."

"이래서 내가 고학력 며느리를 반대했던 거야."

가끔 생각한다. 회의실에서 소리지르고 먼저 나가던 대리의 뒷모습은 의기양양했다. 이겼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대리는 이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내뱉은 시어머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 내내 기분이 좋아 보였다. 시어머니는 뼈다귀 해장국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고 나는 소머리곰탕을 남겼다. 시어머니는 이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버이날 무얼 준비했냐고 물었다. 카네이션 리스를 준비했어요. 시어머니는 승리의 깃발을 꽂은 듯 웃었다.




나를 위해 바다를 향해 달려가 준 그대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해."

전쟁은 무언가를 빼앗기 위해서나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일어난다.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은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했다. 시어머니의 승리 깃발이 그에게는 수치스러웠던 모양이다. 시어머니는 전쟁으로 무언가를 지켰을지 모르지만, 그 전쟁의 끝엔 남편의 쪽팔림이 항상 남았다. 남편에게 말했다. 시어머니에게 상처는 받았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제일 아끼고 사랑한다고. 남편은 나를 보지 않은 채 고맙다고 했다. 매번 전쟁에서 이기는 시어머니도 빼앗아가지 못하는 게 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 눈에만 보인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사람만 지킬 수 있다.






+헤어지려고 쓰는 글이 아닙니다. 날선 평가와 지적은 잠시 내려놓으셔도 괜찮습니다. 비방을 위한 공유는 사양하겠습니다. 아무런 평가 없이 그저 자유로워질 수 있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직장 내 괴롭힘, 지적의 여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